사마리아

사마리아

[ Samaria ]

‘’란 뜻. 북방 50㎞, 에서 내륙으로 33㎞ 지점에 위치한 중부 지방의 이다. 사방이 90여m의 완만한 구릉 위에 세워진 으로 팔레스타인 남북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 요지이기도 하다. 북이스라엘 수도이자, 북쪽 10로 이루어진 북이스라엘의 별칭. 영토는 에서 단까지, 지중해에서 수리아와 까지였으며, 주요 성읍은 세겜, 사마리아, 수가, 실로, 벧엘 등이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6대 왕인 가 건설하여 수도로 삼았다(왕상 16:24-25). 그후 왕 때, 그리고 때 왕 2세에 의해 두 차례의 포위 공격을 당했으며(왕상 20:1; 왕하 6:24-25), 호세아 왕 때 앗수르의 5세에게 포위 공격을 받던 중(왕하 17:3-6; 왕하 18:9-10) 3년째 되던 해인 B.C. 722년 앗수르의 2세에 의해 당하였다. 그뒤 북이스라엘의 지도층을 비롯한 27,290여 명은 앗수르 제국 내 고산에서 지방에 이르는 여러 지역으로 끌려가 분산되었고, 대신에 앗수르 관리들과 들이 사마리아에 들어와 살면서 인종 혼혈 정책에 의해 잡혼(雜婚)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마리아를 비롯한 북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역시 변질되었다.

게다가 사마리아 사람들은 200여 년 후 에서 돌아온 남유다 사람들의 건축을 하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출하였고(스 4:8-24; 느 2:9-20; 4:1-9; 6:1-14), 유다 백성 역시 이런 사마리아 사람들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왕상 18:3, 21; 사 7:9; 렘 31:5; 겔 23:33; 호 8:5; 암 3:1-22). 그후 (Alexander) 대왕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B.C. 332-331년경), 장군 폼페이우스(Pompeius) 역시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행정 구역을 수리아에 편입시켜 버렸다(B.C. 63년경). 그후 대왕은 사마리아를 로마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하사받아 의 뜻으로 ‘세바스테’(Sebaste, 아우구스투스의 헬라 식 호칭)라 명명하고 사마리아를 아름답게 정비했다.

이런 역사적 격랑은 사마리아의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무참히게 짓밟았고, 이런 배경 때문에 들은 사마리아인을 과 동일하게 취급했다. 그리하여 지방 사람들은 북방으로 여행할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요단 동편의 지역으로 우회하는 것이 화되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친히 사마리아를 찾아가 을 전하셨고(요 4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당시 종교인들의 위선을 꾸짖기도 하셨다(눅 10:30-37). 또 은 승천하시면서 사마리아 를 당부하기도 하셨다(행 1:8). 이런 주님의 명을 받들어 들은 다른 여러 곳과 더불어 사마리아에서 전도하였고 과 와 이 설교를 한 결과 이 지역에 들이 세워지게 되었다(행 8:1-25; 9:31;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