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포로

[ 捕虜 , captive ]

에서 적군에게 사로잡힌 군인이나 승전국에 사로잡혀 간 패전국(敗戰國)의 주민. 에서는 앗수르에 끌려간 북이스라엘 (왕하 17:6)과 에 잡혀간 남유다 백성(왕하 24:14; 25:11)에게 주로 사용되었다. 북이스라엘 백성은 베가 왕 때 앗수르의 3세에 의해(왕하 15:29; 대상 5:26), 호세아 왕 때 앗수르 왕 5세에 의해 공격을 받고, 2세에 의해 를 잃으면서 포로가 되어 앗수르 제국 곳곳으로 끌려갔다(B.C. 722년경, 왕하 17:3, 5, 6-7).

이에 비해, 남유다 은 3년(B.C. 605년)에 바벨론 왕 의 공격으로 다니엘과 왕족, 귀족들이(단 1:1-6), 1년(B.C. 597년)에 왕을 비롯하여 에스겔과 , 군사, 들이(왕하 24:14), 그리고 11년(B.C. 586년)에 이 당하고 왕을 비롯한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두 포로가 되었다(왕하 24:10-16; 렘 25:9-11). 그리고 B.C. 581년에는 느부갓네살의 시위 이 에 남아 있던 유다 백성을 다시 포로로 끌고 갔다.

당시 포로들 중에는 예외적으로 대우를 잘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왕상 20:39; 왕하 6:21-22) 대부분은 힘겨운 에 시달리거나 처형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대하 25:11-12). 그리고 포로 된 백성 중 여자의 경우 당하기 일쑤였으며, 아이들 역시 죽임당하였다(왕하 8:12; 암 1:3; 나 3:5, 10). 특히 앗수르는 포로를 가혹하게 취급한 으로 악명 높은데, 이들은 포로의 손이나 발에 를 채우는 것은 예사였고, 심할 경우 이나 혀, 코에 고리를 끼워 끌고가기도 하였다. 또 혀나 눈을 뽑고 에 꿰어 죽이기도 하였다. 반란을 일으킨 포로의 경우는 을 자르거나 사지를 찢어 에 거는 경우도 있었다. 유다 왕 시드기야의 경우는 왕이었지만 바벨론 군사에 의해 눈이 뽑히기도 하였다(왕하 25:7).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재상이 되었으며 제국에서도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를 입었고(단 1장), 에스더는 바사 제국에서 에 올라 전멸 일보직전의 유다 포로민들을 극적으로 살리는 의 도구로 쓰임받기도 하였다(에 2:8). → ‘’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