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

바사

[ Persia ]

오늘날의 이란(‘이란’은 ‘아리안 족의 땅’이란 뜻). 원래, 카스피안 족이 살던 곳이었으나, B.C. 1,500년경 이란의 우르미아 호 남부에 살던 유목민 아리안 족이 카스피안 족을 물리치고 이 땅(이란 )에 정착한 이래 B.C. 4세기경 헬라의 에게 패할 때까지 서남 전역을 지배했던 제국을 말한다. 바사의 경계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 서쪽은 , 남쪽으로는 강,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산맥과 카스피 해(海)까지 였는데, 전성기에는 서쪽으로 그리스 반도까지 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해발 900-2,500m의 고원 지대에 위치하였으며, 연강수량은 200-400㎜ 정도다. 바사 제국은 B.C. 6세기경 왕 때 인근 제국을 시켜 바사의 주요 속주로 삼았다. 특히 바사 제국은 유다 이 에서 귀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과 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 ‘’를 보라.

성경의 바사 왕들

① 2세(Cyrus Ⅱ) - 와 리디아를 합병하고 제국을 시킨 후 바사 제국을 건설했다(B.C. 559-530년). 칙령을 통해 바벨론에 로 잡혀 갔던 모든 들의 귀환을 지시하였다.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던 유다 의 본토 귀환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대하 36:22-23; 스 1:1-4; 사 44:28; 45:1; 단 10:1). 특히 바벨론의 왕이 탈취해 갔던 의 들을 돌려보냈고, 을 에 파견하기도 했다. 피정복지의 과 문화를 수용하고 피정복민들까지 실력에 따라 에 기용할 정도로 관대한 정책을 펴 바사 제국의 토대를 굳건히 쌓은 왕이다.

② 1세(Darius Ⅰ) - 고레스 2세 사후 왕이 된 고레스 2세의 인 캄비세스 2세의 . 캄비세스 2세가 정벌에 나선 틈을 타 승려 가우마타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캄비세스 2세가 본국으로 철군 도중 수리아에서 죽자 다리오 1세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왕이 되었다(B.C. 521-486년경).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재건 도중 많은 에 직면했을 때 고레스의 칙령을 확인하고 성전 재건을 지속할 수 있도록 허락한 왕이다(스 4:24). 그는 바사 역사상 가장 크고 한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사통팔달의 망 확충, 아람어 공용어 채택, 우편 제도, 제도, () 제도 단일화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바사 제국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는 헬라와의 마라톤 에서 패배하였다(B.C. 490년경).

③ 아하수에로(Ahasuerus) - 다리오 1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Ⅰ, B.C. 486-464년경). 에스라와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과 동일인(스 4:6). 그는 바벨론 으로 재위하다 왕위를 승계하였는데, 선대 왕과 달리 폭정을 일삼았고, 그리스 원정에서 실패하여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겼다.

④ 1세(Artaxerxes Ⅰ) - B.C. 464년경 살해당한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한 아르탁크세르크세스 1세(B.C. 464-424년경). 일명, ‘롱기마누스.’ 집권 초기 애굽 반란을 힘겹게 진압하고 이때 도움을 준 그리스와 우호 조약을 맺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재건 때 바사를 다스린 왕이었다(스 4장). 예루살렘 성벽 재건 작업을 중단시켰던 그는 느헤미야의 을 받아들여 느헤미야로 총독을 삼아 성벽 재건에 임하도록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