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석

정희석

[ 鄭熙錫 ]

요약 바이올린 연주가·지휘자. 이화여대(梨花女大) 음대 교수. 해군정훈음악대(海軍政訓音樂隊) 대장. 한국음악가협회(韓國音樂家協會) 연주부 부장. 서울 출생. 일본 제국고등음악학교(帝國高等音樂學校) 졸업.
출생 - 사망 1917년 ~ 2002년
정희석

어려서 바이올린을 독학했고, 경성 제일고보(第一高普) 3학년 때 안성교(安聖敎) 선생에게 체계적으로 바이올린을 공부하여 4학년 때 연희전문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였다. 연희전문(延禧專門) 문과로 진학한 뒤 계정식(桂貞植)의 지도를 받았으며,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독주자로 활약하였다.

1940년 김생려현악4중주단이 창립됐을 때, 제2 바이올린 주자였고, 김생려(제1 바이올린)·최규영(비올라)·브라이스(첼로)와 함께 활동했다. 1942년 후생실내악단(厚生室內樂團) 조직됐을 때 구성원이었다. 1941년 문과를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음악학교 기악과 3학년에 편입해 이듬해 4월에 졸업한 해 7월 동경 송죽교향악단(松竹交響樂團) 바이올린 주자로 2년 동안 활동하다가 1944년 귀국해 홍난파가 이끌던 경성중앙방송국(京城中央放送局) 관현악단 악장으로 활약하면서, 그해 11월 25일 제1회 바이올린독주회를 가졌다.

1944년에 재편성된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의 이사장 현제명(玄濟明) 아래 김원복·윤기선·이흥렬·이규용·나운영·정영재·김영애·이종태 이상의 단원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6년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 제1 바이올린 주자였고, 1946년 9월 16일 우익 음악가들로 결성된 고려교향협회(高麗交響協會)의 회원이었다. 1949년 10월 김원복(피아노)·이강렬(첼로)과 함께 서울3중주단의 발표회를 열었다.

1952년 부산에서 독주회를 개최했고, 1953년 부산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1956년 12월 3일 헝가리 구호음악회 때 출연하였다. 1958년 2월 14일 윤수철 작곡발표회 때 출연했고, 9월 18일 이대강당에서 독주회를 열었으며, 1961년 9월 독주회를 개최하였다.

1962년 당시 이화여대 음대 교수로 김자경(金慈璟)·김순애(金順愛)·채선엽(蔡善葉)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70년 9월 7일 국립중앙극장에서 독주회를 열었으며, 1975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지냈다. 1961년 6월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공연 때 지휘했고, 1963년 6월 퍼셀의 "디오와 에네아스" 공연 때 지휘했으며, 1966년 5월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공연 때 지휘하였다. 1970년 6월 연세대강당에서 베르디의 "춘희" 공연 때 지휘했고, 1973년 6월 모차르트의 "마적" 공연 때 지휘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2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