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득만

정득만

[ 鄭得晩 ]

요약 성악가(선소리 산타령).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19호 선소리 산타령(山打令)의 예능보유자. 선소리 산타령명창. 서울 용산구 서빙고(西氷庫) 출생. 소완준(蘇完俊)·최경식(崔景植)의 제자.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 민요부원(1945), 국악연예사(國樂演藝社) 운영위원(1949), 대한민속예술원(大韓民俗藝術院) 이사(1960).
출생 - 사망 1907년 ~ 1992년
정득만

시조명창 문세근(文世根)에게 시조를 배운 후 20세 때 경서도명창 학강(鶴崗) 최경식(崔景植)에게 본격적인 소리학습을 받기 시작하여 시조·가곡·가사 및 잡가를 사사했고, 특히 12잡가 중에 "적벽가"(赤壁歌)·"제비가"·"평양가"(平壤歌)를 잘 불렀다. 최경식의 제자인 유개동(柳開東)·이창배(李昌培)·김순태(金順泰) 등과 함께 경기잡가(京畿雜歌)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1930년대 잡가의 거장 최경식의 주동으로 조직된 조선가무연구회(朝鮮歌舞研究會)의 박춘재·권경춘·최화춘 등과 함께 활동했고, 1940년대 말 최경식·이창배·김순태 등 경서도명창들과 함께 활동했다. 1941년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의 조선악부 소속으로 창단된 조선가무단(朝鮮歌舞團)의 단원인 최경식을 비롯하여 정득만·이창배·이일선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결성된 국악연예사의 운영부장인 그는 대표인 박천복, 그리고 단원인 이은관·장소팔·김갑수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59년 그가 부른 "제비가"를 한만영(韓萬榮)이 채보한 악보가 전한다. 1960년 청구고전성악학원(靑丘古典聲樂學院)의 제1회 민요대발표회 때 특별 출연하였다.

일제강점기 과천 방아다리패 모갑이 소완준에게 선소리 산타령을 배운 그는 김태봉·김순태·유개동·이창배와 함께 1968년 4월 1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정득만과 그의 제자가 연주하는 선소리 산타령(김대벽 촬영)

정득만과 그의 제자가 연주하는 선소리 산타령(김대벽 촬영)

1976년 12월 문화재관리국과 문화재보호협회가 공동 제작한 『한국의 음악』에서 선소리 산타령을 취입했다. 1977년 6월 7일 국제4회 선소리 산타령, 경기12잡가발표회 때 출연했으며, 1978년 6월 10~12일 민요대잔치의 경기민요 공연 때 출연하였다.

1979년 10월 21일 제10회 중요무형문화재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 때, 그리고 12월 5일 제7회 중요무형문화재 상설극장 때 출연했고, 1984년 5월 7일 조선일보사 주최 제3회 국악대공연 때 출연했으며, 1990년 11월 19일 90년도 하반기(79회) 중요무형문화재 예술단 공연 때 출연하였다. 1992년 10월 30일 향년 85세로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7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