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

분류 문학 > 건축 >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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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지정명: 신라 무열왕릉
지정번호: 사적 제20호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2

일반정보

신라 제29대 무열왕의 능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 동북쪽에는 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이 비를 통해 무열왕릉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으로 가치가 있다.

전문정보

신라 제29대 무열왕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은 경주시 서악동의 선도산 동쪽 능선 말단부의 평지에 위치한다. 무열왕릉의 봉분 높이는 약 8m, 봉분 직경은 35.51m, 봉분 둘레 약 113m이며, 묘제는 횡혈식석실분이다. 봉분 언저리에는 약 1m 내외의 괴석으로 된 호석과 이에 기댄 괴석의 받침석을 돌렸다. 호석의 경우 몇 단을 쌓았는지 알 수 없으나 높이는 약 4m에 이르며, 호석으로 사용된 괴석은 일부만 확인된다. 호석에 기댄 받침석은 10개로 봉분자락에 노출되어 있는데, 최소간격으로 배치된 경우는 80cm 내외에 불과하다.

한편, 무열왕릉의 동북쪽에는 무열왕릉비가 세워져 있는데 현재 귀부(龜趺)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을 받쳤던 초석 4개와 비각(碑閣)으로 오르던 계단의 소맷돌 아랫부분과 귀부, 이수가 남아 있다. 비신의 받침인 귀부는 장방형의 대석 위에 올려진 것으로 네 발과 머리의 표현은 생동감이 넘쳐 있어 신라 조각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등의 전면에 귀갑문을 조각하고 그 주위에는 비운문(飛雲文)을 돌렸다. 비신의 갓머리 장식인 이수의 전면에는 좌우 각 2마리씩 모두 6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모양이 새겨져 있고, 그 중앙에는 전서체의 “태종무열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2행 8자가 양각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5 태종무열왕 8년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서기 661년 6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諡號)는 무열(武烈)로, 묘호는 태종(太宗)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영경사의 자리가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능 서쪽에 삼층석탑이 있어 이곳을 영경사지(永敬寺址)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릉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수의 제액을 고려할 때 그 후방의 묘가 무열왕릉(武烈王陵)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이근직, 2006)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이근직, 2006, 『신라 왕릉의 기원과 변천』,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