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영잡간

예영잡간

분류 문학 > 인물 > 왕족

기본정보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셋째 아들이자, 신라 제43대 희강왕의 할아버지
생몰년: 미상

일반정보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셋째 아들로 김균정의 아버지이자, 제43대 희강왕의 조부이다.

전문정보

『삼국유사』권2 기이2 원성대왕조를 보면 “왕의 자손이 다섯이 있었으니 혜충태자(惠忠太子)·헌평태자(憲平太子)·예영잡간(禮英?干)과 대룡부인(大龍夫人)·소룡부인(小龍夫人) 등이었다”(王之孫 有五人 惠忠太子 憲平太子 禮英?干 大龍夫人 小龍夫人等也)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예영의 신라 제 38대 원성왕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신술각간의 딸 김씨이다. 예영은 헌정, 균정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 둘 모두 왕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예영의 손자대부터는 신라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사기』 권10 신라본기10 원성왕 7년(791)조의 기록에 따르면 장자(長子) 인겸이 먼저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왕위를 잇기 전에 사망하여 시호를 혜충이라 하였고, 동서 원성왕 10년(794)조를 보면 둘째 의영을 다시 태자에 책봉하였지만 역시 일찍 사망하여 시호를 헌평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후 원성왕은 태자로 셋째인 예영이 아닌 인겸의 아들 준옹(俊邕)을 책봉하였고 이후 왕위는 한동안 인겸태자계가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신라 제42대 흥덕왕대(826~836)을 기점으로 인겸태자계의 후손이 왕위를 잇지 못하는 상황이 오자, 예영의 아들인 균정이 강력한 왕위계승권자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그의 손자 제륭은 제43대 희강왕으로 즉위하였다. 희강왕 이후의 신라 왕계는 제44대 민애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영의 후손들이 이어나가게 된다.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三 僖康王 [金氏 名愷隆 一作悌? 父憲眞角干 諡興聖大王 一作(翌)成 禮英?干子也 母美道夫人 一作深乃夫人 一云巴利夫人 諡順成太后 忠衍大阿干之女也 妃文穆王后 忠孝角干之女 一云重恭角干 丙辰年立 理二年]
제43 희강왕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개륭, 혹은 제옹이다. 아버지는 헌진각간이고 시호는 흥성대왕 혹은 익성이라고 하며 예영잡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미도부인 혹은 심내부인 또은 파리부인이라고 하며 시호는 순성태후로 충연대아간의 딸이다. 비는 문목왕후로 충효각간의 딸이며 혹은 중공각간이라고도 한다. 병진년에 즉위하여 2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