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옹

노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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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신앙의 담당자.

일반정보

단순히 늙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신령적 성격으로 무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존재는 노구와 노인이 있다. 신라 상대에는 노구의 기록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신라의 정복전쟁과 불교 수용 이후로 노구 대신에 노옹과 노인의 기록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사금갑(射琴匣)조에 따르면, 제 21대 소지왕(炤知王) 10년(488)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고 한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라고 하였는데, 왕이 기사(騎士)에게 명하여 이를 따라가게 하였다. 남쪽 피촌(避村)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것을 한참동안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때 노옹(老翁)이 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리니, 겉봉에 쓰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금갑 설화의 내용 중에서 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리는 노옹은 단순히 늙은 할아버지로 보기 쉬운데, 여기서 노옹은 신령적(神靈的) 성격이며, 무적(巫的)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노옹에 대한 다른 기록은『삼국유사』권1 기이1 수로부인(水路夫人)조에 나타난다. 여기서 노옹은 인간의 능력으로 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꽃을 꺾어 주며, 향가(鄕歌)를 지어 함께 바치고 있다. 또한 바다의 용에게 잡혀간 수로부인을 구해내는 방법을 노옹이 제시하고 있으며, 노옹의 의견에 따라 수로부인을 구해 낼 수 있었다. 노옹이 지은 향가는 다분히 초자연적(超自然的)·주술적(呪術的)·무격적(巫覡的) 전통을 띄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노옹 또한 무적(巫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노옹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노인(老人)과 노구(老?)를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권41 열전(列傳)1 김유신(金庾信) 상(上)에 따르면 김유신이 수련을 행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비법을 전해주고 있으며, 이 노인은 김유신을 수호하는 신령으로 생애를 통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처음 노구(老?)에 관한 기사가 나타나는 것은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시조 혁거세거서간(始祖 赫居世居西干)조이다. 알영정(閼英井)에 용이 여자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나는 것을 노구가 보고서 이를 길렀는데, 이를 시조가 듣고 비(妃)로 삼았다는 기록이다. 다른 노구의 기록은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조에는 이사금이 순행할 때에 한 노구가 굶어서 얼어 죽으려 하자 왕이 옷을 덮어주고,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늙고 병들어 자활 능력이 없는 자들을 부양하게 했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노구의 기사는 대부분 신라 상대(上代)의 기록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구의 해석에 관하여 늙은 할미로 해석되기 쉽지만, 관련된 사료를 모아 분석한 결과 노구는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왕의 조언자적 역할과 왕에 오를 자격이 있는 자를 돕는 보호령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노구가 신모(神母)의 현신)에 의해서 나타날 때 무적(巫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추론하여 노구로 표현되는 시기를 모계사회제(母系社會制)로 그리고 노옹으로 표현되는 시기에서는 부계제(父系制) 사회로 변화하였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손진태, 1948)

앞서 살펴 본 것에 따르면, 노옹·노인·노구는 동일하게 무적(巫的) 능력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동일한 성격을 가졌으나, 노옹과 노인은 남성이고, 노구는 여성이라는 성(性)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시대적 변화에 따라 등장 시기가 차이 남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경우 노구에 관한 기사는 소지왕 22년이 마지막 기사이고, 진평왕 7년을 기점으로 노인에 대한 기사가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의 경우 노옹에 관한 기록이 소지왕대 처음 보이고 있다. 결국 소지왕대 이전에는 노구가 나타나고 있으며, 소지왕대에는 남성인 노옹과 노인 그리고 여성인 노구가 병용 되어 나타나고, 그 이후에는 노옹 또는 노인이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다.(최광식, 2007)

참고문헌

손진태, 1948, 「朝鮮 古代 山神의 性에 就하여」『朝鮮民族文化의 硏究』, 을유문화사.
최광식, 2007, 『한국고대의 토착신앙과 불교』, 고려대학교출판부.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사금갑)
射琴匣
第二十一毗處王[一作炤智王]卽位十年戊辰 幸於天泉亭 時有烏與鼠來鳴 鼠作人語云 此烏去處尋之 [或云 神德王欲行香興輪寺 路見衆鼠含尾 怪之而還占之 明日先鳴烏尋之云云 此說非也]王命騎士追之 南至避村[今壤避寺村 在南山東麓] 兩猪相鬪 留連見之 忽失烏所在 徘徊路旁 時有老翁 自池中出奉書 外面題云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使來獻之 王曰 與其二人死 莫若不開但一人死耳 日官奏云 二人者庶民也 一人者王也 王然之開見 書中云 射琴匣 王入宮 見琴匣射之 乃內殿焚修僧與宮主 潛通而所奸也 二人伏誅 自爾國俗每正月上亥上子上午等日 忌愼百事 不敢動作 以十六日爲烏忌之日 以?飯祭之 至今行之 俚言?? 言悲愁而禁忌百事也 命其池曰書出池
거문고갑을 쏘다
제 21대 비처왕(毗處王)[또는 소지왕(炤智王)이다.] 즉위 10년 무진(戊辰)(488)에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라고 하였다. [혹은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가서 행향하려 할 때, 길에서 여러 마리의 쥐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괴이 여겨 돌아와 점을 쳐보니 이튿날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으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설은 잘못이다.] 왕은 기사(騎士)에게 명하여 이를 쫓게 하였다. 남쪽 피촌(避村)[지금의 양피사촌(壤避寺村)이니 남산(南山) 동쪽 기슭에 있다.]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것을 한참동안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때 노옹(老翁)이 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리니, 겉봉에 쓰기를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사(騎士)가 돌아와 이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떼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였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렇게 여겨 떼어보니, 그 글에 “거문고갑을 활로 쏘라.”하였다. 왕이 궁중으로 들어가 거문고갑을 보고 쏘니, 내전분수승(內殿焚修僧)과 궁주(宮主)가 은밀히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형되었다. 이로부터 나라 풍속에 해마다 정월(正月)의 상해(上亥)·상자(上子)·상오(上午)일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꺼려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며, 16일을 오기일(烏忌之日)이라고 하여 찰밥을 지어 제사 지내니, 지금도 이를 행하고 있다. 세속의 말에 이를 달도(??)라고 하니, 슬퍼하고 근심하며 모든 일을 꺼려 금한다는 말이다. 그 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이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