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정도-무학

한양 정도-무학

분류 문학 > 초월적 인물형 > 이인(異人)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승려
• 지역 : 기타
• 출처 : 오산설림 ()
• 내용 :
조선 태조가 경기 · 해서 · 관서 세 지방 방백에게 명령하기를, 무학 스님을 빨리 찾으라고 했다. 세 방백이 산골을 다니면서 찾는데, 곡산 고달산에 한 고승이 암자를 짓고 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세 방백이 산 입구에 종자들을 대기하게 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암자가 있는 입구에 세 방백의 인(印, 방백 증명 牌)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평복 차림으로 걸어서 암자로 들어갔다. 방백들이 스님에게 왜 여기에 자리하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삼인봉(三印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스님은 “여기 있으면 세 방백이 와서 인 세 개를 나무에 걸어 놓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삼인봉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세 방백은 그가 무학 스님임을 알고 모시고 왔다. 태조가 기뻐하면서 무학 스님에게 정도(定都) 문제를 물으니, 무학은 한양에 이르러 “인왕산을 뒤로 하고 백악과 남산을 좌우 청룡과 백호로 삼으면 좋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정도전이 반대하면서, “예부터 제왕은 모두 정남쪽을 향하는 법이고, 동향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고 말했다. 이에 무학이 말하기를, “내 말을 따르지 않았다가는 200년 후에 내 말이 생각날 것이다. 신라 때 의명대사의 말에 의하면, 한양을 수도로 정할 때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시비를 하게 되면, 5대를 지나지 않아 왕위 찬탈(簒奪)의 문제가 생기고 200년 뒤에는 나라가 온통 짓밟히는 난리가 있을 것이라 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