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리 유적

용연리 유적

[ 龍川 龍淵里 遺蹟 ]

지역 용천
용연리 유적 출토 토기류 및 석기류

용연리 유적 출토 토기류 및 석기류

평안북도 용천군 용연리에 있는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 집자리 유적으로, 주변에는 일찍부터 원시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유적은 용연리 남쪽에 동~서 1㎞정도로 길게 놓인 연두봉의 30m 정도 되는 평탄한 능선마루에 있다. 주민들이 자리잡았던 마을터의 위치는 대체로 내륙으로부터 서해바다가로 길게 뻗어나간 야산 줄기의 비교적 높은 야산 정점을 중심으로 산경사면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 구역을 설정하여 1·2구역에서 3기의 신석기시대 집자리를 찾아내었다. 유적의 층위는 전면에 걸쳐 표토층 아래 검은 부식토층, 진한 회색 부식토층, 원토층(불그스름한 석비레층)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유물은 진한 회색 부식토층에서 나온다.

집자리는 평면형이 긴네모꼴(長方形)이며 크기는 5m 전후, 움의 깊이는 10~20㎝로 대부분 얕게 나타난다. 기둥구멍(柱孔)이 있으며 화덕자리(爐址)는 특별한 시설없이 약 10㎝ 정도로 우묵하게 파고 불을 피운 간단한 것이다. 바닥은 불을 놓아 굳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출토유물을 보면 반달칼, 도끼, 자귀, 마치, 활촉 등의 석기가 있다. 반달칼은 양면을 잘 갈아 매끈하며 짝날이다. 암질은 점판암, 천매암, 규암 등이 이용되었다. 도끼는 가로자름면이 평타원형이며 조개날이다. 활촉은 모두 5점인데 가로자름면이 편육각형의 납작한 뿌리없는 활촉이다. 이들은 대체로 한국 신석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대부분 전형적인 간석기 재료들에 도끼의 경우도 신석기시대에 많이 나오는 반마반타(半磨半打)의 것이 아니라 전면을 잘 간 것이다. 따라서 용연리 유적의 석기는 신석기 가장 늦은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생김새를 알 수 있는 토기로는 목긴단지, 목이 짧고 입술이 바라진 작은 단지 등이 있다. 목긴 단지 1점은 납작밑에 배가 부르고 세로로 고리손잡이가 1쌍 대칭되게 붙었으며 목과 몸체부분의 경계선에 덧무늬띠를 1줄 돌린 것이다. 그 밑에는 번개무늬와 새김무늬를 베풀었다. 무늬는 번개무늬와 덧무늬의 혼합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무늬없는 그릇들도 많다. 토기밑은 납작밑의 평평한 밑과 들린 굽이 있으며 굽접시도 나온다. 토기의 바탕흙은 대부분 운모가루가 섞인 부드러운 흙을 썼다. 이상과 같은 특징은 이웃 신암리 청등말래 유적에서와 일치한다.

용연리 유적은 이른바 청등말래 유형에 속하는 압록강 유역의 신석기시대 최말기 집자리와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압록강 유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 문화발전의 계승성을 주장하는 논거를 제공하는 유적 가운데 하나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참고문헌

  • 룡연리유적 발굴보고(강중광, 고고학자료집 4, 1974년)
  • 평안북도 룡천군, 염주군 일대의 유적 답사 보고(리병선, 문화유산 1962-1, 196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