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갱

요갱

[ 腰坑 ]

다호리 1호분 요갱

다호리 1호분 요갱

요갱(腰坑)은 무덤의 매장(埋葬) 시설 아래 또는 무덤구덩이(墓壙) 바닥에 유물을 매납하기 위하여 피장자(被葬者)의 허리춤, 즉 무덤구덩이의 한 가운데쯤에 일정 규모로 마련해 놓은 소규모 구덩이를 말한다.

삼한(三韓) 전기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지역의 널무덤(木棺墓)이라는 묘제는 매장시설의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그래서 용적이 어느 정도 되는 유물을 매장시설 안에는 다량으로 부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무널 외에 유물의 매납을 위한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요갱은 널무덤에 별도로 마련된 부장유물 매납시설이며 주로 진·변한(辰·弁韓) 지역의 원삼국시대 무덤에서 자주 보인다.

요갱이 원삼국시대 널무덤에 처음 확인되기는 경주 조양동(朝陽洞) 38호묘일 것이다. 그 후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는 창원(昌原) 동면(東面) 다호리(茶戶里) 1호묘의 발굴조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조양동 38호묘의 경우 가로 세로 40㎝의 말각방형(抹角方形)으로 얕게 판 것인데, 다호리 1호묘에서 노출된 것은 길이 65㎝, 너비 55㎝ 가량의 장방형(長方形)으로 조금 큰 규모일 뿐이다.

다호리 1호묘는 깊이가 2m나 되는 말각장방형의 무덤구덩이에 통나무 널을 안치하였는데 널을 들어내고 난 바닥의 중앙부에서 대나무 바구니가 들어 있는 요갱이 발견되었다. 그 바구니 안에서는 칠초동검(漆鞘銅劍)과 철검(鐵劍) 등의 무기와 주조쇠도끼(鑄造鐵斧) 6점과 철제 농공구류, 성운경(星雲鏡) 및 청동대구(靑銅帶鉤)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후 경산 임당동(林堂洞) 유적과 대구 팔달동(八達洞) 유적에서 발견된 널무덤에서는 유물부장을 위해서는 요갱만이 마련되는 것이 아니고, 무덤구덩이 바닥의 가장자리에도 부장갱(副葬坑)을 파는 예가 많음을 알게 되었다.

이 부장갱 혹은 요갱은 비단 한반도 원삼국시대 널무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상대(商代)에 중원(中原)지역의 덧널무덤(木槨墓)과 관련된 시설물로 발생하였고 황하유역에 넓게 확산되어 나갔다. 상대의 덧널무덤에서 발견되는 요갱은 보통 장방형이나 타원형이고 여기서는 개(犬)를 매납하는 일이 많고 간혹 사람을 순장하거나 옥이 부장되는 일이 있다. 주대(周代)에 들어서면 요갱을 마련하는 장례(葬禮)의 습속(習俗)이 가장 넓게 확산되어 장강유역(長江流域)에까지 미치게 된다. 전국시기(戰國時期)에도 그 분포권역이 중원지역에서 장강유역까지 분포하여 있다가 덧널무덤 축조가 쇠퇴하면서 요갱의 전통도 서서히 줄어들고 한대(漢代)에 들어서면 소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이 한반도 진·변한 지역의 요갱과는 어떤 역사적 관련성이 있는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중국의 한대와 그 이전의 묘제가 한반도 남부, 특히 진한과 변한의 묘제와 공통되는 요소가 다소 있을 수는 있다.

참고문헌

  • 弁·辰韓 社會의 발전과정(李在賢, 嶺南考古學報 17, 1995년)
  • 義昌 茶戶里遺蹟發掘調査 進展報告(李健茂 外, 考古學誌 1, 19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