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낫

쇠낫

[ 鐵鎌 ]

쇠낫

쇠낫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곡물수확도구로 형태는 세장(細長)하고 얇은 철판의 한쪽을 구부려 접어 나무자루를 착장한 것으로 지금의 낫과 거의 동일한 형태이다.

선사시대에도 낫은 동물뼈를 가공하거나 돌로 된 낫이 있었으나 그 예가 매우 적어 용도를 단언 할 수는 없다. 청동기시대 이후의 대표적인 수확구로는 반달돌칼(半月形石刀)이 있으며 이삭을 하나하나 따는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한시대 이후 주로 고분에 매납되는 낫은 곡물을 포기 째 베는 용도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쇠낫은 위원 용연동 유적에서 출토되었으며, 이 유적에서는 쇠낫 외에도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같은 형태의 철제칼이 있어 수확구의 차이가 용도의 차이를 말하는지, 혹은 수확작물의 차이를 말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쇠낫은 삼한시대 창원 다호리 유적를 비롯한 분묘유적에서 매우 빈번하고 보편적으로 출토되는 부장유물의 하나이다. 쇠낫은 인부의 형태에 따라 굽은날 낫(曲刃鎌)과 바로선날 낫(直刃鎌)으로 나뉘며 전체적인 변화경향은 날 폭이 넓은 것에서 좁은 것으로, 날끝이 직선적인 것에서 곡선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농업의 발전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쇠낫은 이러한 농기구로서의 용도 외에도 무기로서도 사용된 예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고분에서의 출토상태로 보아 철검(鐵劍), 쇠투겁창(鐵矛), 큰칼(大刀), 화살촉 등과 같은 무기류와 함께 부장되는가 하면, 창녕 교동 89호에서는 옻칠을 한 나무집에 다른 무기류와 함께 넣어서 부장한 예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주 하봉리 8-1호에서는 무기류인 철창고다리와 함께 된 쇠낫이 출토되어 무기로서의 성격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참고문헌

  • 鐵鎌의 變化와 劃期(安在皓, 伽耶考古學論叢 2,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1997년)
  • 鐵製農具에 대한 考察(千末仙, 嶺南考古學報 15, 嶺南考古學會,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