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방리 유적
[ 价川 墨房里 遺蹟 ]
지역 | 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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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방리 고인돌 하부 구조](https://img-api.cboard.net/img_n.php?image_url=https://dbscthumb-phinf.pstatic.net/1171_000_1/20120613233510562_9BTZBXVAH.jpg/05110.jpg?type=m4500_4500_fst_n&wm=Y)
묵방리 고인돌 하부 구조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노동자구 일대에 있는 고인돌(支石墓) 유적으로 유적은 묘향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 대동강에 이르는 곳에 있는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1960년에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가 처음 발굴하였고 1984년에도 발굴조사가 있었다.
![묵방리 20호 고인돌 실측도](https://img-api.cboard.net/img_n.php?image_url=https://dbscthumb-phinf.pstatic.net/1171_000_1/20120613233510914_BWEGQZ01M.jpg/05110_1.jpg?type=m4500_4500_fst_n&wm=Y)
묵방리 20호 고인돌 실측도
묵방리 일대에는 고인돌, 돌무지무덤(積石塚), 산성(山城), 가마터(窯址), 야철지(冶鐵地) 등 여러 시기의 유적이 널려 있다. 고인돌은 40여 기가 있는데 모두 지상(地上)에 무덤칸을 마련하였고 무덤의 방향은 동쪽과 남쪽이다. 무덤칸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쌓아 세 벽을 만들고, 판돌을 쌓지 않은 동쪽이나 남쪽에는 큰 판돌을 세워 문처럼 만들었다.
무덤칸 바닥에는 벽체를 쌓은 것과 같은 판돌들을 한 두벌 깔았으며(24호), 때로는 큰 판돌을 깐 것(20호)도 있다. 무덤칸의 크기는 길이, 너비, 깊이가 0.8-2.0×0.8-1.2×0.6-0.8m 정도이다. 무덤칸 둘레에는 막돌을 쌓아 보강시설을 하고 그 바깥으로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큰돌을 세워 놓았다. 특히 30호 무덤에서는 무덤칸 문 앞으로 널길(墓道) 시설이 있어 주목된다. 무덤칸 위에는 크고 두꺼운 판돌을 타원형으로 다듬어 올려놓았다. 무덤에서는 묵방리형(墨房里型) 단지와 회색 그릇이 나오고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검(石劍), 돌화살촉(石鏃) 등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묵방리 고인돌군의 무덤형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무덤칸의 방향이 동-서로 된 것과 남-북으로 된 것이 서로 짜임새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막음돌 시설에서 남-북으로 놓인 것이 더 견고하게 되어 무덤 축조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적의 연대는 B.C. 7-6세기에 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토기는 평북 의주군 미송리(美松里) 동굴유적 상층, 吉林 西團山子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다.
참고문헌
- 묵방리 고인돌에 관한 몇 가지 고찰(리정남, 력사과학 85-1, 1990년)
- 조선유적유물도감 2-고조선, 부여, 진국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9년)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 발굴중간 보고(김기웅, 고고학자료집 3,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