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방리 유적

묵방리 유적

[ 价川 墨房里 遺蹟 ]

지역 개천
묵방리 고인돌 하부 구조

묵방리 고인돌 하부 구조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노동자구 일대에 있는 고인돌(支石墓) 유적으로 유적은 묘향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 대동강에 이르는 곳에 있는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1960년에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가 처음 발굴하였고 1984년에도 발굴조사가 있었다.

묵방리 20호 고인돌 실측도

묵방리 20호 고인돌 실측도

묵방리 일대에는 고인돌, 돌무지무덤(積石塚), 산성(山城), 가마터(窯址), 야철지(冶鐵地) 등 여러 시기의 유적이 널려 있다. 고인돌은 40여 기가 있는데 모두 지상(地上)에 무덤칸을 마련하였고 무덤의 방향은 동쪽과 남쪽이다. 무덤칸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쌓아 세 벽을 만들고, 판돌을 쌓지 않은 동쪽이나 남쪽에는 큰 판돌을 세워 문처럼 만들었다.

무덤칸 바닥에는 벽체를 쌓은 것과 같은 판돌들을 한 두벌 깔았으며(24호), 때로는 큰 판돌을 깐 것(20호)도 있다. 무덤칸의 크기는 길이, 너비, 깊이가 0.8-2.0×0.8-1.2×0.6-0.8m 정도이다. 무덤칸 둘레에는 막돌을 쌓아 보강시설을 하고 그 바깥으로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큰돌을 세워 놓았다. 특히 30호 무덤에서는 무덤칸 문 앞으로 널길(墓道) 시설이 있어 주목된다. 무덤칸 위에는 크고 두꺼운 판돌을 타원형으로 다듬어 올려놓았다. 무덤에서는 묵방리형(墨房里型) 단지와 회색 그릇이 나오고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검(石劍), 돌화살촉(石鏃) 등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묵방리 고인돌군의 무덤형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무덤칸의 방향이 동-서로 된 것과 남-북으로 된 것이 서로 짜임새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막음돌 시설에서 남-북으로 놓인 것이 더 견고하게 되어 무덤 축조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적의 연대는 B.C. 7-6세기에 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토기는 평북 의주군 미송리(美松里) 동굴유적 상층, 吉林 西團山子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다.

참고문헌

  • 묵방리 고인돌에 관한 몇 가지 고찰(리정남, 력사과학 85-1, 1990년)
  • 조선유적유물도감 2-고조선, 부여, 진국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9년)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 발굴중간 보고(김기웅, 고고학자료집 3,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