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동

재동

[ Jae-dong , 齋洞 ]

요약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법정동.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면적(㎢) 0.05㎢
행정구분 법정동
행정관청 소재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35 2층 (지번) 가회동 156, 가회동 주민센터
문화재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목차

  1. 역사
  2. 현황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가회동이 가회동, 계동, 원서동과 함께 재동을 관할한다. 북쪽으로는 가회동, 동쪽으로는 계동, 서쪽으로는 안국동·화동, 남쪽으로는 경운동·운니동과 접한다. 전체 면적은 0.05㎢로 종로구 전체 면적의 0.22%를 차지한다.

역사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성부 북부 가회방(嘉會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 때에는 가회방의 가회방계였고, 고종 때에는 가회방의 재동계에 속했다.  갑오개혁 이후에는 가회방 재동계의 재동, 홍현, 맹현, 동곡 지역이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의 관할이 되었고,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재동, 동곡, 홍현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재동(齋洞)으로 개편되었다. 1936년 4월 1일 경성부 재동정(齋洞町)으로 개정되었으며, 1943년 6월 10일 종로구의 신설로 경성부 종로구 재동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9월 28일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되어 서울시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재동정에서 재동으로 개칭되어 서울시 종로구 재동이 되었다.

재동(齋:재계할 재, 洞:골 동)이라는 지명계유정난(癸酉靖難)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수양대군(首陽大君, 1417~1468)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는데 계유정난 당시 김종서, 황보인 등 여러 대신들을 숙청하면서 흐른 피가 내를 이루었고 이를 덮기 위해 많은 재(灰:재 회)가 이 지역에 뿌려졌다고 한다. 이 마을은 잿골, 또는 회동(灰洞)이라고 불렸으며 후에 잿골을 한자화하면서 재동(齋洞)이 되었다.

현황

남쪽으로 율곡로와 접하고 있으며, 동 중앙에서 남북으로 북촌로가 지난다. 서쪽으로 헌법재판소가 위치한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법수호의 최고기관으로, 과거 이 자리에는 조선후기 세도가인 풍양 조씨와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이 살았고, 후에 박지원의 손자로서 개화파의 효시로 알려진 박규수(朴珪壽, 1807~1877), 박규수의 제자이자 갑신정변의 주역인 홍영식(洪英植, 1856~1884) 등이 살았다. 1885년에는 미국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들어섰으며, 이후 1911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1949년 창덕여자중학교 등을 거쳐 1993년 현재의 석조건물이 건립되면서 헌법재판소가 들어서게 되었다. 헌법재판소 별관에는 헌법과 헌법재판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전시관이 조성되었다. 

그 외에 재동에는 한식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한식문화공간 이음,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조성된 한지문화산업센터 등이 위치한다. 

철도 시설로는 수도권 전철 3호선이 안국역을 지나고, 문화재에는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등이 있으며 헌법재판소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