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보

이현보

[ 李賢輔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중종 때 성주목사의 선정으로 왕에게 표리를 하사 받았다. 호조참판, 자헌대부에 올랐고,1554년 중추부지사가 되었다. 어부가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전한다. 저서《농암집》이 있다.
분강서원

분강서원

출생-사망 1467 ~ 1555
본관 영천
비중
농암 ·설빈옹
시호 효절
주요저서 《농암집》

본관 영천(永川). 비중(棐仲).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 시호 효절(孝節).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의 벼슬검열(檢閱)을 거쳐 1504년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서연관(書筵官)의 비행을 공박하여 안동으로 귀양갔다. 1506년 중종반정지평(持平)에 복직, 밀양·안동의 부사, 충주목사를 지냈다. 1523년(중종 18) 성주목사 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받았고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1542년 호조참판, 이듬해 상호군이 되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1554년 중추부지사가 되었다. 10장으로 전해지던 어부가(漁父歌)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며, 예안(禮安)의 분강서원(汾江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농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