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유구
[ 魚有龜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숙종 때 정언 ·수찬 ·응교 등을 지내고 병조참지로 있을 때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이후 어영대장 겸 훈련대장 ·돈령부영사를 역임하였고 신임사화 때 노론을 극력 변호하였다.
![어유구 집터](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4/20180516185725345_01GN09ZBK.jpg/9207034.jpg?type=m250&wm=N)
어유구 집터
출생-사망 | 1675 ~ 1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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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함종(咸從) |
자 | 성칙(聖則) |
호 | 긍재(兢齋) |
시호 | 익헌(翼獻) |
주요저서 | 《긍재편록(兢齋編綠)》 |
본관 함종(咸從). 자 성칙(聖則). 호 긍재(兢齋). 시호 익헌(翼獻).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 태릉(泰陵)참봉을 거쳐 정언 ·수찬 ·응교 ·승지 등을 지냈다. 1718년 병조참지로 있을 때 딸이 세자빈(世子嬪: 景宗妃)에 책봉되었으며,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함원(咸原)부원군에 봉해지고, 이듬해 어영(御營)대장 겸 훈련대장, 1722년 돈령부영사가 되었다. 신임사화 때 노론(老論)을 극력 변호하였고 유생들이 건의한 윤선거(尹宣擧) ·윤증(尹拯)부자의 복직에 반대하였으며, 그 뒤 김일경(金一鏡)의 무고로 양주(楊州)에 낙향하였다. 영조 때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영의정이 추증되고, 문집에 《긍재편록(兢齋編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