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극

성사극

[ 聖史劇 ]

요약 15~16세기 프랑스에서 행해진 대규모 종교극.
원어명 mystères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그 수난을 극화해서 상연하였으며, 그 밖의 성자 ·성녀에 관한 전설도 소재가 되었다. 성사극의 최초 문헌은 샤를 6세가 파리의 트리니테성당에 본부를 둔 수난극협회(Confrérie de la Passion)에 대하여 1402년 12월 4일부로 성사극 상연의 특권을 인정한 칙서이다. 이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수난 ·부활과 모든 성인 ·성녀의 미스테르의 상연을 인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헌은 상설극장과 정규극단의 최초 공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연극사상 주목을 받는다. 같은 특권이 1518년 1월 프랑수아 1세에 의하여 재확인되었다. 공식인가를 얻은 성사극은 그 얼마 후 프랑스 전국에 유포되었다. 오늘날 조사 가능한 기록으로 알려진 숫자를 들면 상연된 성사극은 대략 100편, 동일작품이 몇 번씩 상연되었으나 특히 수난극은 86회, 성사극을 상연한 도시는 88개에 달한다.

각 도시는 전속극단에 의하여 또는 시민들 중 다수의 출연자를 모집하여 다투어 구 ·신약성서, 성자전을 무대에 올리고 이를 위하여 방대한 예산을 소비하였다. 하나의 작품은 4일 내지 40일에 걸쳐 상연되었는데, 그 중에는 6개월 내지 7개월에 걸쳐 매 일요일(중요한 제식일 제외)에 상연되고 등장인물도 500명에 달하는 것이 있었다. 이러한 융성에 따라 극단측의 무지 ·몰이해에 기인하는 독성행위(瀆聖行爲)가 일찍부터 지적되었고, 특히 대중극으로서 발전하게 되자 동작이나 대사에도 익살기가 가미되어 막간 희극적인 경향이 인기를 끄는 한편 그에 대한 비난도 따랐다. 특히 이런 종류의 화려한 오락 때문에 성직자들이 교회에서의 본무에 태만하고 구경을 하거나 또 극단에 출입하는 등의 폐풍이 생겨났다는 것이 문헌에 남아 있다. 병치식(竝置式) 장치를 사용하고 무대(hourt 또는 hourdement)의 아래쪽에 넓은 홀과 그 위에 천국을 두었는데, 그 주위를 노래를 부르면서 천사가 날고 위쪽에 용(龍)이 입을 크게 벌린 지옥의 입구가 설치되었으며, 그 입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악마가 출입하고 차바퀴에 결박되어 고통을 받는 망자(亡者)들이 대포의 초연을 통해서 보인다.

이런 두 장소 사이에 나자레 ·신전 ·예루살렘 ·궁전 ·주교관(主敎館) ·금문(金門) ·바다(方形의 水盤) ·지옥 등의 장소와 관(館:mansions)이 설치되고 배우는 연기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수시로 무대 중앙에 나와 연기를 하고 역이 끝나면 관으로 돌아간다. 희곡으로는 파리의 수난극협회가 손을 댄 《사도행전》의 성사극, 구약성서의 성사극도 유명하지만 대표작은 아르눌 그레방작(1450?)의 《파리의 수난극》, 외스타슈 마르카데작(1440 이전) 《알라스의 수난극》, 장미셸작(1486) 《앙제의 수난극》 등이다. 그레방은 성모의 비탄을 묘사하는 데 뛰어나고 마르카데는 전편의 통일에 뛰어났으며 미셸은 간결함이 특색이다. 극작은 아니지만 활인화(活人畵)에 속하는 성사(聖史) 이야기의 구경거리가 왕후의 행차나 성대한 의식에 일찍부터 쓰였는데, 그 기록이 대략 44편 전해온다. 이것을 미스테르 밈(mystères mimes)이라고 하였다. 또 파리에서는 격년(隔年)으로 여름에 노트르담 광장에서, 남독일 바이에른의 오버아머가우에서는 17세기 이래 오늘날까지 10년에 한 번씩 전시(全市)가 참여하여 수난극을 성대하게 상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