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연극

르네상스연극

요약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연극.

이 시기의 연극은 전체적으로 중세연극으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성질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궁정과 그 주변의 귀족을 관객으로 삼았던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는 고대극 부흥의 색채가 농후한 데 비하여, 서민층의 관객이 많았던 에스파냐와 영국에는 중세연극의 형태가 남아 있었다. 연극운동은 어느 시대나 문학운동보다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다. 이탈리아에서 고전극을 바탕으로 한 격조 있는 비극과 희극이 나타난 것은 16세기 들어와서이며, 비극 《소포니스바:Sofonisba》(1514∼15)의 작자 G.G.트리시노가 최초의 작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학이 이미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극은 무의미한 잔학과 음산한 분위기를 과장할 뿐 별다른 걸작을 낳지 못하였다.

희극은 라틴극을 모방한 운문극과 대본이 없는 즉흥극(코메디아 델 라르테)으로 나뉜다. 운문극으로는 L.아리오스트의 《요술사》와 《뚜쟁이》, 마키아벨리의 《만드라골라》 등이 유명하다. 코메디아 델 라르테는 줄거리만 있고 대사는 없어, 극도의 배우술(俳優術)을 발달시킴으로써 루찬테, 스칼라 등의 명배우를 낳았다. 이탈리아가 만들어낸 르네상스 시대의 또 하나의 장르는 전원극(田園劇)으로, 타소의 《아민타》, G.B.구아리니의 《충실한 양치기》는 전 유럽의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이 시대의 이탈리아가 세운 공적은 직업극단을 성립시킨 것(이는 각국의 대세였으나 여배우를 최초로 쓴 것은 이탈리아이다)과 프로시니엄스테이지(額子舞臺)라고 불리는 새로운 극장양식을 낳은 것이다. 황금세기(16세기 중엽∼17세기)의 에스파냐극은 고대극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의 세력이 확고부동했고 중세의 종교극에 익숙한 민중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에 비극이나 희극을 상연하는 경우에도 성찬신비극(聖餐神秘劇), 막간희극(幕間喜劇) 등의 덤이 따른 것은 중세의 흔적이며 무대도 여인숙의 안뜰을 이용한 가건물로 삼면이 무대를 향한 반(半)중세양식의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코메디아 속에는 C.L.F.de 베가의 《국왕이야말로 둘도 없는 재판관》, G.de 카스트로의 《엘시드의 청년시대》와 《엘시드의 무훈》, M.솔리랴의 《왕 말고 아무도 없다》, P.카르데론 데 라 발카의 《사라메아의 촌장》 등의 진지한 역사극과 틸소 데몰리나의 《세비야의 호색가》 등의 종교극, 그리고 ‘의협극(義俠劇)과 검극류(劍劇類)’로 불리는 복잡하게 뒤얽힌 베가의 《정원사의 개》 《상대를 모르는 채 사랑하다》, 카르데론 데 라 발카의 《사랑은 장난으로 하지 않는 법》 《잔잔한 물에 조심할 것》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영국에서도 서민적인 관객의 세력이 컸기 때문에 막(幕)의 구분 없이 흐르듯이 상연되는 중세 성사극(聖史劇)의 전통이 남아 있어 극장은 생겼으나 여인숙의 안뜰을 이용한 가건물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형편이었다. 국민사(國民史)에서 취재한 사극(史劇), 배신과 잔학을 소재로 한 음산하고 선정적인 비극, 이탈리아의 콩트 등에서 소재를 따온 희극, 동화의 세계라고까지 할 수 있는 공상희극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때로는 그것들이 한 편(篇) 속에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영국 르네상스연극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은 역시 W.셰익스피어이지만, 그 밖에도 C.말로, J.웹스터, P.매신저, 벤 존슨 등 많은 작가가 있으며, 이들을 총칭하여 엘리자베스왕조의 극작가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플레야드 시파(詩派)가 이탈리아의 근대극을 모방하여 격조 있는 비극과 희극을 쓰려고 하였으나 시작(試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상업주의적인 극장을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독일에서는 한스 작스의 사육제극(謝肉祭劇)이 나왔으나 비극은 결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