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김일성

[ 金日成 ]

요약 북한의 정치가. 1948년부터 1994년 사망할 때까지 내각수상과 국가주석으로 권력을 독점해 개인숭배체제를 구축했으며, 6·25전쟁을 일으켜 남북분단을 공고화하였다.
김일성

김일성

출생-사망 1912.4.15 ~ 1994.7.8
본명 김성주
국적 북한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본명은 김성주(金成柱/金聖柱)이며, 1912년에 출생하였다. 1930년대 항일운동에 참여하면서 김일성(金日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김형직(金亨稷)과 강반석(康盤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으로 김철주(金哲柱)와 김영주(金英柱)가 있다.

어린시절과 학력

1919년 7세 때 부모를 따라 만주 지린성[吉林省] 푸쑹[撫松]으로 이주한 김일성은 평성(平城)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1926년 정의부(正義府)가 운영하던 조선인 학교인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해에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이듬해인 1927년 중국인 학교인 육문중학교[毓文中學校]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조선공산주의자청년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중국 군벌에게 체포되면서 퇴학당했다.

중국공산당 입당

1930년대에는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도 코민테른(Comintern)의 ‘1국 1당의 원칙’에 따라 중국공산당 동만특위(東滿特委)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항일유격대를 구성해 산악지대에 항일유격구를 세우고 무장활동을 펼쳤다. 김일성도 193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안투 현[安圖縣]에서 항일유격대를 구성해 무장활동에 참여했으며, 1933년 각지의 항일유격대들이 통합해서 구성된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의 제3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항일 활동

그런데 당시 중국공산당 동만특위에서는 1932년 11월부터 1936년 2월까지 ‘반(反)민생단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에 대한 숙청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오랜 기간 항일운동에 참여해왔던 조선인들이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어 명확한 증거도 없이 체포·처형되면서 만주지역의 공산주의운동에서는 급격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김일성의 지위와 영향력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1936년 동북인민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재편되자 김일성은 제1로군(第一路軍) 소속 제2군(第二軍) 6사(師) 사장(師長)이 되었다. 이 시기에 김일성은 1937년 6월 함경남도 갑산군의 보천보(普天堡)를 공격하고 1940년 3월에는 두만강의 지류인 홍기하(紅旗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동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궤멸 상태에 빠진 동북항일연군 지도부는 잔여병력을 이끌고 소련의 영토인 연해주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겼는데, 김일성도 1940년 가을 연해주로 탈출하였다. 소련으로 건너간 김일성은 스파이로 몰려 국경경비대에 붙잡혀 수감되기도 했으나 동북항일연군 사령관이던 저우바오중[周保中] 덕분에 석방되었다. 연해주에서 동북항일연군 세력은 1942년 소련 극동군사령부 휘하의 교도여단(矯導旅團)인 제88특별여단으로 편입되었는데, 김일성은 이 부대 제1영(營)의 영장(營長)이 되었다. 그리고 하바롭스크 근교에 주둔하면서 훈련과 교육을 받았으며, 소련이 대일참전을 앞두고 조선공작단을 구성하자 단장이 되었다.

북조선노동당 창설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을 시작하자 김일성은 최용건(崔庸健)·김책(金策)·안길(安吉) 등과 함께 제88특별여단 소속으로 소련군을 따라서 남하하였다. 그리고 9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소련군의 군함을 타고 원산항에 상륙했다. 국내로 들어온 김일성은 국내 각지를 돌며 공작활동을 전개했고,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이북5도 당원 및 열성자대회에 참석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리고 10월 14일에 열린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소련군 사령관의 소개를 받으며 대중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러한 소련군의 지원에 힘입어 1945년 12월 17일에 열린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책임비서의 자리에 올랐다. 1946년 2월 8일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며, 1946년 8월 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통합하여 북조선노동당이 창설되었을 때는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47년 2월에는 북한 지역의 임시정부로 수립된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며,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는 내각 수상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1949년 6월 30일 북조선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통합하여 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김일성의 통치

소련군의 지원에 힘입어 북한의 권력을 장악한 김일성은 민족주의자들뿐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에서도 국내파·연안파·소련파·갑산파 등의 정치적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며 1994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의 권력을 독점해왔다. 그래서 북한 사회에 1인 숭배에 기초한 매우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당의 지배를 내세운 다른 공산주의국가들과는 달리 혈통의 지배를 내세우며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여 매우 기형적이고 봉건적인 유사-왕조체제를 만들었다.

이러한 김일성의 통치체제는 크게 3개의 단계를 거쳐 형성되었다. 제1단계는 1950년대로 김일성이 반대파를 제거하고 1인 지배체제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김일성은 내각 수상이자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인민군총사령관으로 6·25전쟁을 일으켜 남북의 분단과 군사적 대립체제를 공고히함으로써 정치적 지배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전쟁을 거치면서 권력을 집중시키고 박헌영(朴憲永) 등 남로당 계열의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해 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김일성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는 천리마운동농업협동화 정책 등을 통해서 사회적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1956년에는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반종파투쟁을 벌여 중국과 소련의 지지를 받던 ‘연안파’와 ‘소련파’를 제거하고 1인 지배체제의 기반을 닦았다.

제2단계는 1960년대로 1인 지배체제의 정치적·사상적 기반을 강화한 시기이다. 김일성은 1965년부터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제창하면서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구분되는 독자노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6년 10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14차 전원회의에서 신설된 비서국의 총비서 자리에 올라 당내의 사상투쟁을 주도하며 주체사상을 북한의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강조했다. 이 시기에 박금철(朴金喆) 등 ‘갑산파(甲山派)’의 인물들이 숙청되었으며, 김일성의 오랜 동료이던 김창봉(金昌奉), 허봉학(許鳳學) 등도 숙청되었다.

제3단계는 1970년대 이후로 1인 지배체제가 확립·강화된 시기이다. 김일성은 1972년 12월 27일 헌법을 새로 제정해 내각 수상보다 훨씬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국가 주석의 자리를 새로 만들어 취임하였다. 그리고 사회 각 영역에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1977년 국가의 공식이념을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바꾼 김일성은 이른바 ‘혁명적 수령관’에 기초해 자신에 대한 1인 숭배를 강화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수’할 것을 강조하며 아들인 김정일(金正日)로의 세습체제의 기반을 닦았다. 1992년 김일성은 아들인 김정일을 원수(元帥)로 추대하고 자신은 대원수의 자리에 올랐으며, 1993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김정일에게 물려주었다. 이 시기에는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金聖愛)와 동생인 김영주 등 가족 내부의 권력 갈등과 숙청 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권력 세습

김일성은 김정일로의 권력 세습을 추진하면서 1980년대 이후에는 국내의 일은 김정일에게 맡기고 자신은 통일과 외교 분야의 일을 주로 관장하였다. 그래서 1991년 9월에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1994년에는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4년 7월 8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상회담은 실현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시신은 현재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錦繍山太陽宮殿)에 안치되어 있으며, 북한은 1998년 5월에 헌법을 개정하여 김일성에게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 북한의 최고 지도자

이 름 재임기간

제1대

김일성

1950.07 ~ 1991.12

제2대

김정일

1991.12 ~ 2011.12

제3대

김정은

2011.12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