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봉

김두봉

[ 金枓奉 ]

요약 북한 정치가. 한글을 연구하여 광문회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한글 학자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8·15광복 후 북한에서 조선신민당을 조직하여 그 위원장을 지냈으나 소련군의 압력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합당해 북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되었다.
출생-사망 1889 ~ 1960
국적 북한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부산 동래

1889년 3월 17일 부산 동래에서 출생하였다.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후 교사로 근무하였다. 한글을 연구하여 광문회(光文會)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한글학자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임시정부 산하 임시사료편찬위원회에서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1924년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1929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비서장에 취임하였다.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을 맡았으며 내무부장 겸 선전부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1942년 옌안[延安]에서 활동하면서 조선독립동맹에 가담, 그 해 7월 주석이 되었다.

1945년 8·15광복 후 북한에서 조선신민당을 조직하여 그 위원장을 지냈으나 1946년 8월 소련군의 압력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합당하여 북조선노동당이 창건되자 그 위원장이 되었다. 그해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0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교 개교 후 초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남북한 노동당이 합당하여 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되자, 최고인민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실권 없는 자리로 밀려났다. 이때를 전후하여 김일성 체제에 불만을 품고, 옌안파 중진들과 함께 저항하였다. 그러나 1958년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의 결의로 당에서 제명당하였고, 그 후 평남 순안 농장의 노동자로 쫓겨나 중노동을 강요당하며 연명하다가 1960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