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부흥운동

고구려부흥운동

[ 高句麗復興運動 ]

요약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으킨 저항운동.

668년 평양성을 함락한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고구려 전역을 9도독부 46주 100현으로 나누어 실질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이와 동시에 고구려인의 저항을 방지하기 위하여 유력한 고구려인 2만 8000여 호를 중국의 내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러한 당나라의 정책에 반대하여 669년 대형(大兄) 검모잠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성(漢城:황해도 재령)을 근거지로 하고 안승을 왕으로 옹립, 고구려 부흥을 기도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신라와의 연합도 꾀하였다.

그리하여 670년 고구려의 유장(遺將) 고연무와 신라의 장군 설오유(薛烏儒)가 이끄는 연합군이 요동지역으로 진격, 말갈족 군대를 격파하였으나, 당나라의 대규모 반격으로 후퇴하였다. 이때 부흥군의 내부에서는 의견의 대립으로 분열,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는 사태로 발전하였다.

한편 신라는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부흥군 세력과 신라와의 관계는 더욱 밀착하게 되었다. 671년 안시성이 당나라 군에 함락되고, 672년과 673년의 백수산(白水山) 전투와 호로하(瓠瀘河) 전투에서의 패배로 부흥군의 잔여세력은 신라로 들어갔다. 이로써 부흥군의 무력활동은 끝이 나고 당나라와의 무력대결은 신라가 담당하게 되었다. 신라는 이들 유민들을 금마저(金馬渚:익산)에 집단 이주시켰으며, 그들은 684년 대문(大文)의 반란을 계기로 해체되어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고구려부흥운동 본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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