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풍자

다른 표기 언어 satire , 諷刺

요약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일부 유래된 풍자는 일상의 말투에서 발달하여 시, 우화와 기록문화, 대화와 독백에서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1960년부터 영국 텔레비전 쇼들은 촌극과 개그, 노래 및 춤으로 신랄하고 무질서하며 변화무쌍한 오락 수단을 제공했다.
시각예술에서는 만화가 주요한 풍자 수단이었고 음악에서는 19세기 베를리오즈가 예배음악의 가락을 풍자적으로 뒤틀어 이용하기도 했다. 무용에서는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발레단이 나치군을 풍자하기도 했다.
한 개인을 부당하게 악의로 공격하는 풍자의 한 종류를 램푼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18세기와 문예부흥기에 영국문학에서 특히 유행했는데 그 작가로 드라이든, 브라운, 월크스 등이 있다.

풍자는 사실 부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유래했지만 고대 로마인들, 특히 1세기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자신들이 풍자를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원래 풍자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음미할 만한 줄거리가 거의 없는 미숙한 형태의 연극이었으며, 이 연극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자는 운문이나 산문처럼 딱딱한 전달 형식이 아니라 평소에 말할 때의 자연스러운 말투로 발달했고, 그리하여 시와 일상 언어, 우화와 기록문화, 대화와 독백에서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20세기의 나이트 클럽 같은 데서 공연되는 익살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장르의 초기 형태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풍자라는 단어가 1960년 무렵부터 서양에서 다시 널리 쓰이게 되었을 때(그 이전의 영국과 미국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용어를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고풍스러운 말로 생각했음), 영국의 〈That Was the Week That Was〉나 미국의 〈Rowan and Martin's Laugh-In〉 같은 텔레비전 쇼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촌극과 개그, 노래 및 춤(풍자는 원래 거의 이런 형식으로 제시되었음)으로 신랄하고 무질서하며 변화무쌍한 오락 수단을 제공했다.

20세기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는 풍자 작가들이 고고한 입장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비판한다고 주장해도 결국에는 단순한 화풀이로 끝나기가 쉽다는 점을 지적했다. 1세기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와 18세기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흔히 그 대표적인 보기로 간주된다(→ 유베날리스 풍자). 그런 경우 풍자는 희극과 비극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BC 1세기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훨씬 더 온건한 어조로 풍자시를 썼고, 제인 오스틴은 어릴 때 쓴 〈사랑과 우정 Love and Friendship〉 같은 작품에서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호라티우스 풍자).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람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으로 남을 죽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주의 정부시대에 스탈린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러시아의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의 경우처럼 풍자는 남을 죽이는 대신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많다. 서양에서는 영국의 전직 총리인 알렉 더글러스 홈 경이 1963~64년 자신의 내각이 무너진 원인을 1960년대초에 유행한 풍자 탓으로 돌린 적이 있다.

시각예술에서는 만화(예를 들면 19세기 프랑스의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조각가인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가 주요한 풍자 수단이었지만, 18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풍속화는 예외이다(→ 캐리커처). 음악에서는 19세기 프랑스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환상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에서 예배음악인 〈최후의 심판일 Dies Irae〉의 전통적 가락을 풍자적으로 뒤틀어 마녀들의 연회 장면에 이용했다.

무용에서는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 발레단이 병사들의 투구에 악마의 뿔을 달고 무릎을 뻣뻣이 편 채 행진하는 걸음을 발레 스텝으로 안무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공격한 것을 멋지게 풍자했다. 20세기말에 서양에서는 프랑스의 〈카나르 앙셰네 Le Canard Enchainé〉, 영국의 〈프라이빗 아이 Private Eye〉, 미국의 〈내셔널 램푼 National Lampoon〉 같은 정기간행물과 나이트 클럽이나 텔레비전의 코미디언들이 풍자를 널리 보급했다.

소련에서는 〈크로코딜 Krokodil〉이라는 잡지가 언론이 엄격한 통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가벼운 풍자를 보여준 것으로 유명했다. 한편 악의에 찬 글, 한 개인을 이유 없이 때로는 부당하게 악의로 공격하는 풍자문의 한 종류를 램푼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용어는 17세기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어 사용되었지만, 그 예는 BC 3세기 아리스토파네스의 연극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개구리들 Batrachoi〉에서 에우리피데스를 풍자했고, 〈구름 Nephelai〉에서는 소크라테스를 풍자했다. 영국문학에서는 이것이 18세기와 문예부흥기에 특히 유행했고, 그 예로는 존 드라이든, 토머스 브라운 및 존 월크스 등이 사용한 풍자와 익명작가가 쓴 수십 편의 풍자가 있다.

한국의 풍자

한국의 본격적인 풍자문학은 고려시대의 가전체 소설로부터 시작한다. 무신의 집권으로 몰락한 문인들이 중국 당·송의 풍자소설을 모방하면서 시작된 가전체소설은 의인화된 소재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질타했는데, 작품으로는 임춘의 〈국순전 麴醇傳〉, 이규보의 〈국선생전〉, 이곡의 〈죽부인전〉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사상을 소재로 한 천군류와 의인류가 성행했다.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천군류는 마음을 의인화한 천군(天君)을 중심으로 충신형과 간신형의 인물유형이 천군의 나라를 배경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소설이다. 임제의 〈수성지 愁城誌〉, 이옥의 〈남령전 南靈傳〉, 김무옹의 〈천군전 天君傳〉 등이 있다. 또 사물을 의인화한 의인류에는 남성중의 〈화사 花史〉, 안정복의 〈여용국전 女容國傳〉 등이 있고 동물을 의인화한 〈장끼전〉·〈별주부전〉 〈서동지전 鼠同知傳〉 등이 있다.

꿈의 형태를 빌려 역사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불만을 토로한 몽유류(夢遊類)에는 김시습의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 임제의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 작자 미상의 〈운영전 雲英傳〉 등이 있다(→ 몽유록). 조선 후기에 와서는 제한적으로 나타났던 풍자가 여러 계층의 문학으로 두루 확산되었는데 당대의 풍자문학의 정점은 박지원의 소설이다. 조선 말기에는 풍자소설에서 골계와 해학이 두드러졌고 호색풍자와 같은 대담한 소재도 나타났다. 1930년대에는 식민지체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풍자문학이 등장했으며 대표적인 작가는 김유정채만식이다.

김유정(金裕貞)
김유정(金裕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