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아리스토파네스

다른 표기 언어 Aristophanes
요약 테이블
출생 BC 450경
사망 388경
국적 그리스

요약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작품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희극기법에 있어 합창과 마임 및 벌레스크가 그리스 연극의 기원인 종교의식에서 맡았던 역할 그대로를 의미하는 고희극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단계에서 대표적인 극작가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사람으로는 유일하다, 그의 희극은 대개 구성이 느슨하고 줄거리 전개가 비논리적이며 등장인물의 성격묘사가 부족하지만, 수많은 형태로 번역되어 20세기 무대에도 자주 올려졌다. 이런 성공요인으로는 재치 있는 대사, 때로는 심술궂지만 대체로 기분 좋은 풍자, 특히 논쟁을 좋아하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익살스럽게 흉내낼 때 보여주는 멋진 솜씨, 근대 풍자 만화가들의 상상력과도 비교할 수 있는 일부 장면의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음과 독창성 및 창조력, 합창곡의 독특한 매력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아리스토파네스는 작품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그러나 실제로는 남아 있는 작품보다 소실된 작품이 더 많음).

고(古)희극, 즉 희극기법에 있어 합창과 마임 및 벌레스크가 그리스 연극의 기원인 종교의식에서 맡았던 역할 그대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단계에서 대표적인 극작가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 남은 사람은 아리스토파네스뿐이다(구희극). 그러나 그는 고희극의 말기에 속해 있으며, 실제로 현존하는 그의 마지막 희곡은 합창요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中)희극 작품의 현존하는 유일한 표본으로 보아도 좋다.

중희극은 생명이 짧아서, BC 4세기 이전에 좀더 사실주의적인 신희극으로 바뀌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대개 구성이 느슨하고 줄거리 전개가 비논리적이며 등장인물의 성격묘사가 부족하지만, 세월의 시련을 견뎌내면서 수많은 형태로 번역되어 20세기 무대에도 자주 올려지며 라디오에도 방송되었다. 이런 성공의 요인으로는 재치 있는 대사, 때로는 심술궂지만 대체로 기분 좋은 풍자, 패러디의 재기발랄, 특히 논쟁을 좋아하던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익살스럽게 흉내낼 때 보여주는 멋진 솜씨, 근대 풍자 만화가들의 상상력과도 비교할 수 있는 일부 장면의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음과 독창성 및 창조력, 합창곡의 독특한 매력, 그리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참신함과 소박함, 그리고 적어도 관대한 나이의 관객에게는 많은 장면과 비유적 대화에서 솔직하게 표현된 음탕함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알려진 사실은 그가 자신의 희곡에서 언급한 것들이다.

BC 450년경에 태어난 그는 판디오니스 부족에 속하는 아테네 시민이었지만 출생지는 확실하지 않다(아테네 시민들이 그가 아테네 출신이 아니라고 비난한 것은 그나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가 아이기나 섬에 땅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름). 그는 BC 427년에 〈잔치 손님들 Daitaleis〉이라는 희곡으로 극작생활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오늘날 남아 있는 단편으로 미루어보아 동시대인들의 교육론과 도덕론을 풍자한 희극이었던 것 같다.

그는 통틀어 40여 편의 희곡을 쓴 것으로 여겨지는데(극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매년 평균 1편씩 쓴 셈임), 작품은 대부분 아테네의 사회적·문학적·철학적 생활을 다룬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많은 작품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서 얻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전쟁은 근본적으로 아테네 제국주의와 보수적인 스파르타의 충돌이었고, 아테네 정계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인 쟁점이 되었다.

평화주의자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어른이 된 뒤 상당기간 아테네 정부를 지배한 다소 호전적인 정치가들(페리파네스에서 클레오폰에 이르기까지)과 대립했다.

단편으로만 남아 있는 〈바빌로니아 사람들 Babylōnioi〉은 BC 426년에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 상연되었다. 이 축제에는 명목상으로는 아테네의 '동맹자'이지만 실제로는 아테네의 위성국이었던 도시 국가들의 대표단도 참석했다.

이 희곡은 당시 아테네의 실권자였던 선동 정치가 클레온을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동맹자'를 아테네인 데모스(선거권을 가진 아테네 시민 전체를 의인화한 인물)의 노예로 묘사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발되었다. 그러나 그의 혐의가 반역죄였는지 아니면 그가 아테네 출생이 아니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에서 나온 전문적인 문제에 근거한 것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든 아리스토파네스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가운데 사실상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11편뿐이다. 〈아카르나이 사람들 Acharneis〉`(BC 425)은 이 11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전쟁의 어리석음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농부 디카이오폴리스는 호전적이며 스파르타에 적개심을 품고 있는 아카르나이의 숯 굽는 노인들이 합창으로 맹렬히 반대하는데도 스파르타인들과 개인적인 강화조약을 맺는다. 이 희곡에는 디카이오폴리스의 사설시장을 무대로 한 신랄하고 익살스러운 두 장면이 들어 있다. 하나는 가난한 메가리아인이 두 딸을 집에서 굶주리게 하기보다는 돼지로 변장시켜 시장에 내다 파는 장면이다.

또하나는 부유한 보이오티아인이 진실로 아테네다운 물건을 찾다가 밀고자 하나를 사는 장면이다.

이듬해에 발표된 〈기사들 Hippeis〉(BC 424)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바빌로니아 사람들〉로 당한 고발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에서 공격한 선동 정치가 클레온을 다시 공격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클레온은 어리석고 성미 급한 데모스의 총애를 받는 노예로서 영향력과 권력 있는 지위에 오르지만, 결국에는 그보다 악당 근성과 뻔뻔스러움에서 훨씬 단수가 높은 소시지 상인인 아고라크리토스라는 인물에게 쫓겨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첫번째 희극에서 다루었던 주제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구름 Nephelai〉(BC 423)은 소피스트들이 보급하고 가르친 '근대' 교육과 도덕을 공격하고 있다.

이 희극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조롱당하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학교인 프론티스테리온('생각하는 가게')이 불타서 잿더미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독특한 소피스트에게 가장 적대적인 비판자였는데 작가가 소크라테스를 대표적인 소피스트로 선정한 이유를 두고 학자들은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였다.

〈말벌들 Sphēkes〉(BC 422)은 필로클레온(클레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늙은 배심원을 통하여 소송 걸기를 좋아하는 아테네인들의 성향을 풍자했다.

필로클레온의 아들 브델리클레온(클레온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위해 집에서 '법정'을 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법정에서 심리한 첫번째 '사건'은 집에서 기르는 개가 치즈 한 토막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필로클레온은 마침내 법정에 대한 열정을 고친다. 〈평화 Eirēnē〉(BC 421)는 각기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호전 정책의 주창자였던 클레온과 브라시다스가 둘 다 전투에서 전사한 지 7개월 후에,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적대행위를 6년 동안 중지한 니키아스 강화조약(BC 421. 3?)이 비준되기 불과 몇 주일 전에 상연되었다.

이 희극의 주요주제는 전쟁의 신이 제우스의 허락을 얻어 동굴로부터 평화의 여신을 구출하는 것이다. 환락향(신을 인류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새가 세운 나라)을 무대로 한 〈새들 Ornithes〉(BC 414)은 '공상 희극'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아테네인들이 제국주의적 꿈에 사로잡혀 BC 415년에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 대한 불운한 원정에 나선 것을 풍자하는 정치풍자극으로 여긴다.

〈리시스트라타 Lysistratē〉(BC 411)는 아테네군의 시칠리아 원정이 참패(BC 413)로 끝난 지 얼마 후, 그리고 아테네에서 400인 반란(이 반란은 BC 411년 과두정권의 수립을 가져왔고, 이 정권은 스파르타와 강화조약을 맺는 데 앞장섰음)이 일어나기 직전에 씌어졌다.

이 희곡은 아테네 여자들이 리시스트라타의 선동으로 그리스의 모든 여자들과 힘을 합하여 남자들이 강화조약을 맺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기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고,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 금고를 점령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해학과 외설, 진지함과 익살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 〈리시스트라타〉와 같은 해에 〈데메테르 축제를 축하하는 여인들 Thesmophoriazousai〉이 발표되었다. 이것은 아마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곡 가운데 가장 익살스러운 작품일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네 여자들이 그의 비극에서 끊임없이 공격당한 것에 화가 난 나머지 다가오는 축제에서 그를 죽이는 문제를 논의할 작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에우리피데스는 여자처럼 여리고 곱상하게 생긴 비극 시인 아가톤에게 여자로 변장하여 그 축제에 참석해서 그를 변호해달라고 설득한다. 아가톤이 거절하자, 에우리피데스는 처남인 므네실로코스에게 그 일을 맡아달라고 설득한다.

므네실로코스는 결국 여자로 철저하게 변장하고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 탄로나는 바람에 여자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어서 그가 탈출을 꾀하는 장면이 3번 나온다. 이 세 장면은 모두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텔레포스 Telephus〉·〈팔레메데스 Palamedes〉·〈헬레네 Helenē〉를 익살스럽게 흉내낸 것이다. 이 3번의 탈출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난다. 마침내 에우리피데스가 직접 축제 현장에 도착하여, 다시는 여자들을 모욕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자신의 변호인을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개구리들 Batrachoi〉(BC 405)은 문학적 희극이다.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최근에 그가 총애하던 작가 에우리피데스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 몸소 영웅 헤라클레스로 변장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와 그의 위대한 선배 아이스킬로스 사이에 벌어진 경쟁 결과, 디오니소스는 아이스킬로스의 주장에 설복당하여 에우리피데스 대신 아이스킬로스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온다. 〈의회의 여인들 Ekklésiazousai〉(BC 392)에서는 아테네의 여인들이 남자들 대신에 또다시 권력을 잡는다.

플라톤의 〈국가〉 제5권에서 토론되었던 부·소유물·성(性)의 공동관리·소유문제를 강하게 회상시키는 줄거리를 다루고 있으며, 이런 강한 회상은 아리스토파네스가 플라톤의 이론을 풍자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가운데 그가 살아 있을 때 상연된 마지막 작품인 〈플루토스 Ploutos〉(BC 388)는 약간 단조로운 작품이므로 그의 명성에는 보탬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중희극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크레밀로스는 신탁에 따라 눈먼 노인을 쫓아가서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 노인이 바로 부의 신 플루토스임이 밝혀진다.

크레밀로스는 플루토스의 눈을 고쳐주었고, 시력을 되찾은 부의 신은 옛날의 나쁜 동료들을 버리고 진실한 사람들과 사귀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눈이 밝아졌기 때문에, 그들이야말로 그가 사귀고 후원해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희곡은 설명적이고 별로 재미있지 않은 세 장면으로 끝난다.

〈플루토스〉를 상연한 직후 아리스토파네스는 〈아이올로시콘 Aiolosikon〉과 〈코콜로스 Kokolos〉라는 2편의 희곡(지금은 소실됨)을 남기고 죽었다.

이 희곡들은 그의 아들이 BC 387년경에 무대에 올렸는데, 2편 모두 신화를 주제로 한 벌레스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