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베날리스

유베날리스

다른 표기 언어 Decimus Junius Juvenalis 동의어 데키무스 유니우스 유베날리스, Decimus Iunius Iuvenalis
요약 테이블
출생 55/60(?), 이탈리아 아퀴눔
사망 127경 이후
국적 로마

요약 유베날리스의 풍자시들은 2가지 주요주제, 즉 로마 시의 사회적 타락, 인류의 어리석음과 잔인함을 표현했다. 그가 쓴 많은 시구와 경구들은 관용구로 흔히 쓰이게 되었는데, '빵과 서커스', '호위병 자신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가?'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의 16편의 풍자시는 폭군 도미티아누스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등의 후계자들이 지배하던 시절의 로마 생활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 풍자시들은 5권의 책으로 묶여서 발표되었다. 제1~5편이 실려 있는 제1권은 폭군 도미티아누스의 공포정치를 회상하고 있으며, 100~110년에 간행되었다. 장시 제6편이 실려 있는 제2권은 115년의 시사 문제를 언급했다. 제7~9편을 실린 제3권은 그를 문학의 유일한 희망으로 평가한 너그러운 황제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된다. 제4권과 5권에는 각 제10~12편, 제13~16편을 담았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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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생애
  3. 풍자시
  4. 영향력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

개요

그의 많은 시구와 경구들은 관용구로 흔히 쓰이게 되었다.

'빵과 서커스', '호위병 자신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가?'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생애

유베날리스와 동시대인 가운데 그에 관해 말한 사람은 마르티알리스이다.

마르티알리스는 유베날리스가 자기 친구라고 주장하고, 그를 표현력이 풍부한 달변가이자 부자들한테서 돈을 구걸하여 살고 있는 가난뱅이로 묘사했다. 유베날리스의 전기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이것들은 그가 죽은 지 훨씬 뒤에 씌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의 전기에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지만, 길이가 짧고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믿을 수 없는 부분도 때때로 많다.

이 빈약한 자료들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유베날리스의 집안이 부유했다는 것이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재위)의 정부에 들어가 출세하기 위한 첫 단계로 육군 장교가 되었지만, 진급하지 못하자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궁정 신하들이 장교의 진급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선언한 풍자시를 썼는데, 이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로마 제국 국경지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외딴 도시(지금의 이집트 아스완)로 추방당했다.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된 뒤, 그는 로마로 돌아왔다. 그러나 돈도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부자들이 마지못해 주는 인색한 자선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피보호자'(client) 신세가 되었다. 몇 년 뒤 그의 형편은 좀 나아진 것 같다. 풍자시 제11편에 나와 있는 자서전적 언급에 따르면, 이제 나이든 그는 로마에서 그런 대로 안락하게 살고 있고 티부르(지금의 티볼리)에 하인과 가축이 있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기의 풍자시는 여전히 염세적이지만, 어투에 뚜렷한 변화가 보이고 인간다운 다정함도 깃든 것으로 보아 그는 마침내 어떤 위안을 찾아낸 것 같다. 그의 죽음을 자세히 설명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는 아마 127년이나 그 이후에 죽었을 것이다.

풍자시

유베날리스가 쓴 16편의 풍자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폭군 도미티아누스와 그보다는 좀더 자비로운 후계자들, 즉 네르바(96~98), 트라야누스(98~117), 하드리아누스(117~138)가 지배하던 시절의 로마 생활을 주로 다루고 있다(〈풍자시〉). 이 풍자시들은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간행된 5권의 책에 몇 편씩 묶여서 발표되었다.

제1~5편이 실려 있는 제1권은 폭군 도미티아누스의 공포정치를 회상하고 있으며, 100~110년에 간행되었다(유베날리스와 동시대인타키투스도 그 시대의 불신과 공포에 적개심을 품고 있었음). 장시 제6편이 실려 있는 제2권은 115년의 시사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제7~9편이 실려 있는 제3권은 그를 문학의 유일한 희망으로 평가한 너그러운 황제(자격이 있는 작가들을 돕기 위해 문학협회에 기금을 기부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분명함)를 찬양하는 말로 시작한다.

제10~12편이 실려 있는 제4권에는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언급이 전혀 없다. 제13~16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5권은 127년이라는 해를 2차례에 걸쳐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유베날리스 풍자).

유베날리스의 풍자시들은 2가지 주요주제, 즉 로마 시의 사회적 타락, 인류의 어리석음과 잔인함을 공격한다. 제1편에서 유베날리스는 악덕과 범죄 및 부의 남용이 절정에 이르러 풍자시를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유력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예로 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키지는 않았다. 때로는 살아 있는 동시대인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앙갚음을 막을 수 있는 유용한 보증서였고, 로마가 몇 세대 동안 계속 부도덕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2편의 시는 남자들의 동성애를 비웃고 있는데, 제2편은 수동적인 동성연애자를 조롱하고 제9편은 능동적인 동성연애자와 수동적인 동성연애자를 함께 조롱한다. 제3편에서는 유베날리스의 친구가 남에게 의지하여 사는 굴욕적인 삶을 포기하고, 그리스인을 비롯한 외국 이민들 때문에 황폐해진 로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살기 불편한 로마를 떠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살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반면 제5편에서 유베날리스는 남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는 또다른 사람이 이따금 후원자의 만찬 초대를 받을 때마다 견뎌야 하는 고의적인 모욕을 묘사함으로써 그런 의존적인 삶을 조롱한다. 제4편에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사소한 문제(보통 냄비에 넣기에는 너무 큰 가자미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아첨꾼 각료들을 불러 각의를 연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600행이 넘는 제6편은 로마 여자들의 어리석음과 거만함, 잔인함 및 성적 타락을 무자비하게 비난하고 있다.

제7편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로마 지식인들의 가난과 비참을 묘사하고 있다. 제8편에서 유베날리스는 세습귀족들의 종교를 공격한다. 그의 풍자시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중요한 시의 하나인 제10편에서는 인간의 야망(재물, 권력, 영광, 장수, 외모의 아름다움)을 살펴보고, 그것이 모두 실망이나 위험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갈구해야 하는 것은 '건강한 몸에 깃든 건강한 정신과 용감한 가슴'이다.

제11편에서 유베날리스는 옛 친구를 초대하여 조용하지만 편안하게 식사를 같이 하면서, 어리석을 만큼 사치스러운 부자들의 잔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제12편은 참된 우정과 돈이 목적인 우정을 구별하는 조용하고 짧은 시이다. 제13편에서 유베날리스는 친구에게 약간의 돈을 사기당한 사람을 위로하면서, 그런 정도의 나쁜 짓은 흔해빠진 일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반면에 제14편에서는 자식들에게 탐욕을 가르치는 부모를 비난한다. 제15편은 이집트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한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 버린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인간이 짐승보다 더 잔인하다는 증거이다. 제16편에서 유베날리스는 중요한 주제인 직업군인의 특권을 조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이 시는 60행째에서 문장 중간이 끊겨 있다. 나머지 부분은 고대에 소실되었다.

유베날리스의 시적 기법은 매우 뛰어나다. 개별 풍자시의 구조는 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뚜렷하고 강력하다. 그의 풍자시는 소리와 운율이 의미를 모방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능숙한 표현효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그의 풍자시에는 신랄한 구절과 인상적인 경구가 많이 들어 있는데, 유베날리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 시구와 경구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예를 들면 '빵과 서커스', '가난을 억누르면 값은 서서히 올라간다', '호위병 자신은 누가 보호해줄 것인가', '글을 쓰고 싶어 좀이 쑤신다', '가장 큰 존경은 어린이에게 바쳐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그의 시집에는 거의 모든 쪽마다 생생하고 잔인할 만큼 솔직한 말이 나타나 있다. 유베날리스는 연고와 강장제, 당나귀 젖과 찜질 약으로 아름다운 얼굴 피부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부유한 여인의 노력을 설명한 뒤, "그건 얼굴인가, 아니면 궤양인가?"하고 묻는다.

그는 인상적이고 혐오스러운 장면들을 명쾌하게 묘사하여, 그 장면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황제에게 버림받은 총신들의 동상을 녹여 부엌용품이나 요강을 만드는 광경을 본다. 술취한 아내가 대리석 바닥에 토하는 동안, 남편이 혐오감에 사로잡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본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아내에게 독살당한 황제)가 머리를 부들부들 떨고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하늘로 올라가는'장면을 본다.

돈을 주고 고용한 대리인이 신부를 즐겁게 해주는 동안, 성불구자인 신랑이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본다. 유베날리스는 상냥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거나 낙천주의자들의 취향에 맞는 시인은 아니지만 힘을 가지고 있었다(운율학).

영향력

그가 죽은 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그리스도교를 널리 선전한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200년경에 살면서 글을 썼고, 유베날리스만큼 열정적인 의분으로 가득 차 있었음)가, 그 다음에는 다른 그리스도교 저자들과 이교를 믿는 문학도들이 유베날리스의 작품을 읽고 인용하기 시작했다.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에 대한 주해서(이 책은 오늘날까지 전해짐)는 350~420년 사이에 편찬되었고, 아마도 그때까지 보존된 유일한 사본이었던 하나의 원본을 바탕으로 2가지 형태의 편집이 이루어졌다.

그후 유베날리스는 끊임없이 연구대상이 되었고 존경을 받았다. 조반니 보카치오와 니콜라 부알로 및 바이런 경을 비롯한 많은 풍자 작가들이 그를 모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