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예술

아프리카 예술

다른 표기 언어 African art

요약 사하라 이남에 사는 아프리카 흑인 고유의 예술.

목차

접기
  1. 역사
  2. 아프리카의 직물과 피복
  3. 아프리카의 장신구와 실용품
  4. 아프리카의 건축과 회화
  5. 아프리카의 조각
  6. 아프리카의 음악

백색인종 지역인 북아프리카의 예술과는 판이하다. 아프리카 예술은 19세기에 인류학자가 연구할 때까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20세기 초두에 유럽의 미술가가 흑인예술, 특히 조각의 특이한 조형에 주목한 이래 널리 일반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가봉(Gabon)의 가면
가봉(Gabon)의 가면

역사

선사시대의 아프리카 미술작품은 잘 부서지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다. 유품은 극히 빈약하고 사막지대의 암벽화나 서부 수단 및 삼림지대의 여러 왕국의 미술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즉 기원전에 속하는 것으로는 사하라, 나이지리아, 동부 및 남부 아프리카에 분포하는 암면채화(巖面彩畵)나 각화, 또 북부 나이지리아의 노크 문화의 테라코타제(製)의 소상(小像)이 있다. 기원후에 속하는 것으로는 차드 호반(湖畔)의 사오(Sao) 문화 테라코타상(像), 나이지리아의 이페와 베냉의 청동조각 등이 있다. 또 드물게는 과거의 미술양식이 후세까지 존속해 있는 예도 있다.

가령 베냉의 청동 조각이나 부조는 수세기 동안, 쿠바(Kuba)의 왕상(王像)은 3세기 이상에 걸쳐 동일 양식이 유지되었고, 또 도곤의 조상상도 오랫동안 같은 양식이 이어졌다. 시에라리온의 노몰리(nomoli) 동석제(凍石製) 소상과 현대의 멘데(Mende) 목각과는 양식이 흡사하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시대의 변천을 반영한 각종 영향을 유럽 등지에서 받고 있다. 이미 기원전에 페니키아의 상인들이 북서아프리카와 접촉했으나, 7세기에는 이슬람교가 아랍인과 함께 수단에 들어왔다.

그리고 11세기에는 포교를 위한 성전(聖戰)에 의해 이슬람교가 서부 수단 일대에 전파되었다. 이 전쟁에는 아랍의 역사가와 여행자들이 수행했는데, 그중 어떤 사람은 나이저강(江) 중류의 통북투대학 및 도서관과 왕래했다. 한편 동부 아프리카 해안은 예로부터 인도양 교역망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은 동부 아프리카 일대에서 방대한 양의 중국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유럽인이 서부 아프리카 해안과 최초로 접촉한 것은 15세기였으나 내륙부까지 간 것은 그때부터 400년 후이다.

아프리카의 미술적 전통은 무역상인·군인·학자·선교사·정복자 등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되어왔다. 그러나 1960년대에 와서 현대과학에 입각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그 전통적인 고립성이 없어지고 전통적인 기술도 파괴되어 옛 미술형식이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직물과 피복

여성은 너비가 넓은 수직직기(垂直織機)로, 남성은 너비가 좁은 수평직기로 베를 짰다(→ 직조). 재료는 목화나 라피아(raffia)이고, 드물게는 양모나 수입 명주이다(→ 텍스타일).

직물무늬는 줄무늬와 격자무늬가 보통이고 때로는 단순한 빗줄[斜線]무늬와 지그재그 무늬로 짜여진 것도 있다(→ 장식예술). 특히 쿠바족 등의 콩고 부족들은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라피아제(製)의 직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무늬는 상자·컵·북 등의 목조각품에도 있다.

직포(織布)나 수피포(樹皮布)는 천연 안료나 염료로 물들이고, 특히 아샨티족의 압나장식(押捺裝飾)은 표주박으로 만든 소형압기(小型押器)를 쓴다.

요루바족의 여성은 풍부한 무늬가 있는 남색과 백색의 베를 제작한다. 이것은 얼핏 보면 납염(蠟染)과 비슷하나 납이 아니고 녹말풀을 쓴다. 서부 수단의 몇몇 부족, 특히 밤바라족은 어두운 바탕에 밝은 모티프가 있는 염색작품을 만드는데, 그것은 염색한 베에 특별히 만든 흙물이나 비누로 무늬를 그려 표백하는 방법을 쓴다.

서부 아프리카나 콩고의 많은 부족은 아플리케(appliqué)를 한 베를 만드는데 이것은 주로 왕실용이나 의식용이다. 자수 기법은 조포(組布) 바지나 터번 등의 자수를 통해 북부 아프리카에서 도입되었다. 그리고 모로코 피제품의 기법은 북쪽에서 서부 수단에 도입되었는데, 이런 제품에는 자수와 같은 디자인의 아플리케가 있는 염색한 샌들(sandal)이나 그릇 등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장신구와 실용품

아프리카의 보석세공에는 금, 은, 쇠, 진유, 타조의 난각(卵殼), 상아, 유리 등과 코끼리털을 꼰 것들이 쓰였다.

지방에 따라 다른데, 특히 나이지리아의 이페나바다에서는 현지산 유리로 비즈(구슬)와 팔찌가 제작된다. 목걸이·발목걸이·팔찌는 단철이나 주조진유(鑄造眞鍮)로 제작된다. 각종 호부는 장식품이라기보다 호신용이나 행운을 부르기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사하라 이남에서는 녹로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토기는 모두 손으로 만든 것이고 노천 가마에서 저온으로 구워지기 때문에 깨어지기 쉽다. 가정용 토기에는 종종 각인(刻印)무늬를 시공하거나 소성 후에 식물의 액즙이나 수지로 광택을 내거나 착색을 했다. 목제 스툴(stool)이나 의자에도 장식을 가했으나, 루바족·초크웨족·바장게족과 카메룬 초원의 여러 부족의 경우에는 인상조각(人像彫刻)을 한 것도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바울레족의 경우 동물과 인간의 두부를 곁들인 수평직기가 시선을 끈다. 아샨티족의 주조진유로 만든 금분 계량용 추(錘)에는 인물·동물·식물을 나타낸 것이나 기하학적 형태의 것이 있다. 나이지리아의 누페족의 금속세공은 훌륭하고 타출(打出) 또는 압출한 무늬를 곁들인 여러 가지 단지가 있다.

누페족의 사냥 도구
누페족의 사냥 도구

콩고에서는 대장간에서 철제 징(1개로 된 것과 2개가 꼭지에서 연결된 것이 있음), 말탄 사람을 조각한 막대, 포유동물이나 새의 모양을 한 제사용구 등의 의식용품을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건축과 회화

아프리카인의 주거는 유목생활을 한 풀라니족이나 피그미족의 집처럼 나뭇가지나 잎으로 된 극히 간단한 것에서, 북아프리카에 원형(原形)을 두고 있는 점토제의 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주거건축). 전형적인 주거는 입구가 하나의 원통형이고 창도 없는 집인데, 지붕은 원뿔형의 초가집이다.

가족은 흔히 여러 채가 모여 흙담 또는 울타리로 둘러싼 구획 안에 산다. 서아프리카 일대에는 기둥·문짝·문지방 등에 조각을 하는데, 특히 훌륭한 건축장식용 조각은 카메룬,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서부 수단에 있는 것들이다.

벽화에는 자연의 암벽에 그린 것과 토벽에 그린 것이 있다(바위그림). 토벽에 그린 회화에는 형상적(形象的)인 것(예를 들면 나이지리아의 이보족의 벽화), 기하학적인 도형(예를 들면 남아프리카의 은데벨레족의 벽화), 본질적으로는 비회화적인 것(예를 들면 콩고 민주공화국의 망베투족 집의 벽화 도형)이 있다.

이 범주에는 긁어서 그린 그림이나 얕은 부조(浮彫)에 채색한 장식 등도 포함된다. 한편 방대한 양의 선사 암벽화가 사하라 사막, 리비아 사막, 아틀라스 산맥, 호가르 고원 등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많은 암벽화가 분포해 있는 지역은 타실리나지에르·호가르(알제리), 이포라스(말리), 페잔(리비아), 에네디·티베스티(차드), 아이르(니제르) 등의 각 산악지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연구는 시작되었을 뿐이고, 통일적인 편년표(編年表)는 아직 작성된 것이 없다.

이들 암벽화는 채화(彩畵) 또는 각화(刻畵)인데, 채화는 마애(磨崖)의 암벽에 그린 것, 각화는 독립한 돌덩이에 새긴 것이 많다. 가장 초기의 암벽화는 중석기시대에 속하고, 후기의 것은 아랍인의 침입 후에 속한다.

초기에는 인물상은 보이지 않고 코끼리·하마·영양(羚羊)·코뿔소·기린 등이 각각 따로 새겨져 있다. 그후 야생동물과 함께 둥근 머리에 흉터 같은 신체장식이 있는 인물화가 보이고, 가축이 된 소의 방목, 말과 말이 끄는 전차에 모래시계 모양의 인물, 조종(釣鐘) 모양의 스커트를 입은 사람을 수반하는 그림, 그리고 최후에는 낙타가 등장하고 있다.

또 지역적으로 기원 전후부터 리비아·사하라·티피나그 문자가 나타나고 최종 단계에는 아랍 문자가 암벽에 등장한다.

이와 같은 암벽화는 탄자니아에서 짐바브웨를 거쳐 남아프리카나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남부의 각지에도 널리 분포해 있다. 이들은 현재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먼이 그린 것이다. 제작 시기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있으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및 그밖의 자료에 의해 가장 오래된 것은 BC 4000년경까지의 것도 있고, 최신의 벽화로는 19세기에 속하는 것도 있다.

초기의 벽화에는 동물이 단독으로 그려져 있으나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수렵·어로·무용 등의 광경이 나타난다. 신장이 다른 두 종족간의 전투를 나타낸 벽화는 남부 아프리카에 침입해온 반투어(語)계의 여러 부족과 선주민인 부시먼과의 전투를 그린 것인데, 최종 단계에서는 말을 타고 총을 든 유럽인을 그린 그림도 있다. 이 유럽인의 등장으로 일찍이 남부 아프리카의 지배자였던 부시먼이 19세기 중엽 불모의 칼라하리 사막으로 물러갔다.

암벽화의 전통은 현재도 서부 수단의 도곤족에 존속해 있다. 이들 벽화에는 조상숭배의 일환인 장송무용(葬送舞踊) 때의 가면인물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하면 가면이 갖는 주력(呪力)이 벽화에 옮겨가기 때문에 그 가면을 쓰면 안전하다는 신앙에 근거한다. 그러나 도곤족의 벽화 중에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 세속적인 그림도 있다.

아프리카의 조각

아프리카 조각은 대부분 목제(채색된 것이 많음)였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2,000년 전의 테라코타제로 북부 나이지리아의 노크 문화에 속한다. 노크 문화에 속하는 인물상과 동물상은 흑인 아프리카의 양식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

차드 호반의 사오 문화(1000경)와 남부 나이지리아의 이페 문화(14, 15세기경)에도 테라코타제의 조각이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테라코타 조각은 코트디부아르·북나이지리아·가나 및 기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석조각은 극히 드물고 시에라리온, 서부 나이지리아, 콩고 민주공화국 남부에서 발견된 동석으로 만든 인물상이 그 드문 예이다. 이페(나이지리아)나 짐바브웨의 유적에서도 오래된 작품이 발견되고 있으나, 이들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지리아의 누페족은 에시에의 석상 조각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것이나 높이 50㎝ 정도의 입상 또는 좌상으로, 제작 시기는 1700년경이다. 동부 나이지리아의 크로스 강 상류, 이콤 지방의 에코이족의 묘지에 특이한 석상이 있다. 이 석상은 사람 모양을 얕은 부조로 조각한 길고 평탄한 돌[石] 기념비로, 죽은 족장에게 바친 것이다.

이페·베냉에서 청동 또는 진유 조각품 제작은 왕가의 특권이었다. 특히 이페의 주조 조각은 극히 사실적 양식을 가졌고, 사하라 이남의 미술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 이것은 20세기초에 유럽인에게 발견되었을 때 고대 그리스제(製), 이집트제, 또는 르네상스기(期)의 유럽제로 오인되었다. 이페 조각의 대부분은 사람의 머리로, 조상숭배의 의식에 사용된 것 같다. 베냉의 청동 조각은 15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890년대 이전에는 유럽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13세기에 이페의 영향을 받아 시작한 베냉 조각은 환조와 부조로 대별되나, 주로 인상 또는 머리 부분의 환조, 동물·인간·식물을 곁들인 부조판, 방울, 가면, 그리고 표범 등의 동물과 제례용품 등이 있다. 이런 제품은 주로 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왕인 오바(oba)는 항상 좋은 의복과 장식품을 단 모양으로 한층 크게 표현한다. 베냉 조각은 초기의 것은 재료가 양질이고 양식도 세련되었으나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재료도 양식도 조잡해졌다.

바울레족과 아샨티족의 금이나 은의 금속조각도 왕가의 특권이었다. 또 상아조각도 널리 유행되었는데, 특히 베냉과 콩고 민주공화국의 많은 부족들에게 훌륭한 것이 많다. 인물이나 동물을 나타낸 가면은 무용의상과 함께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정령을 나타내는데, 제작은 흔히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성인식·농업·사법·조상숭배 등에 관한 의식 때에 쓰인다. 라이베리아 또는 서부 코트디부아르의 포로(poro) 결사의 가면은 이와 같은 모든 기능을 모두 겸하고 있다.

인상 조각에서는 머리부분이 크고 웅크린 형태이며, 몸통과 얼굴은 개성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사실적인 초상 조각은 드물다. 이들 조각은 조상숭배(도곤족·밤바라족), 액 퇴치용(카메룬의 팡족), 풍요, 질병치료용, 개인적 행복을 위해 또는 기념적 조각(바울레족의 초상 및 王像)으로 제작된다. 어느 것이나 모든 감상적인 분식을 배제하고 단순한 매스(mass:질량감을 나타내는 형체)를 소박·명쾌하게 표현한 극히 정적인 조각이다.

아프리카의 음악

아프리카 음악이라는 단일하고 명확한 식별이 가능한 음 현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이슬람 음악문화의 영향 아래 있는 북아프리카 음악,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교 예배음악, 사하라 사막 이남의 소위 '검은 아프리카'의 음악 등은 서로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받아왔다.

그러나 음악적 관습의 몇 가지 측면에서 이들 음악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점이 인정된다. 특히 사하라 이남의 음악 전통은 과거 개별적인 정치적 문화적 단위로서 기능을 가졌던 여러 부족사회에 의해 유지되어왔기 때문에 독자적인 음악규범을 따르는 다양한 음악양식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기악곡의 경우 온음계적 7음음계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성악에서는 평균율 음정에 가까운 것이 많아 음수(音數)·음역·음정 어느 1가지도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음악 운용의 기회도 의례·제사·연회·노동·오락 등 생활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며, 그 기능도 신화, 전설, 교훈, 시사적 화제의 전달, 권력자에 대한 풍자나 찬미, 소송, 치료, 기우(祈雨) 등 여러 가지이다.

'검은 아프리카' 음악의 기법·구조·기능·연주양식의 현저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에는 아주 다양한 악기가 있는데, 타악기 종류가 가장 많다. 이것은 목금(木琴) 등의 몸울림악기나 북 등 막울림악기는 물론 호른이나 플루트 등 공기울림악기, 류트·하프 등 줄울림악기와 잘 어울린다.

공기울림악기에서 1명의 연주자가 1음씩 담당하여 2~3명 그룹으로 하나의 선율을 표출하는 포켓 기법이 발달한 것이나, 줄울림악기에서 찰주(擦奏)보다는 타주(打奏)나 적주(摘奏)가 많은 것 등이 그 예이다. 타악 효과는 많은 경우 복잡한 리듬 효과와도 관련된다. 동일 템포나 규칙적인 박자를 엄밀하게 유지하는 경향, 즉 '메트로놈적 감각'은 다양한 리듬이나 당김음을 만들어내는 기초가 되며 여러 명의 연주자나 가수가 각기 다른 리듬이나 악센트를 표출하면서 전체적으로 일정한 템포에 따름으로써 복(複)리듬이나 복박자현상을 낳는다.

예를 들면 헤미올라 리듬이라 불리는 2박자와 3박자의 중복은 서아프리카 및 중부 아프리카에서 많이 쓰이는 복리듬의 기본요소이다.

아프리카 음악의 구조상·기법상의 특징으로는 다음성(多音性)이 중요하다. 이것은 복수로 행해지는 가창이나 기악 및 그 조합인 경우, 다성음악이라고 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특히 가창인 경우는 평행 음정(3~5도가 많음)이나 지속음이 많이 사용되고, 기악에는 대위법적인 수법이나 오스티나토가 사용되는 일이 많다.

다성음악에서는 수직 방향의 음정관계가 아니라, 각 연주자의 표출음이 각각 똑같은 가치를 갖고 동시에 흐르는 수평 방향의 독립성이 중시된다. 다음성은 또한 다른 음질을 갖는 음을 동시에 울리게 하거나 하나의 악기가 여러 가지 음질이나 음높이를 갖게 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가창에 자주 박수가 수반되는데, 이는 단지 박자를 맞추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육성과는 대조적인 음질을 제공해 음의 충돌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아프리카에 편재하는 여러 종류의 딸랑이나 방울 등은 다른 음질을 갖는 것이 서로 짝이 되어 사용되는 일이 많고, 또 틈북은 연주하는 장소에 따라 다른 음높이를 낼 수 있다. 또한 목금에 '잡음'을 내는 염주나 공명통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여러 가지 음이 동시에 표출되어 복잡한 다음(多音)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틈북(slit drum)
틈북(slit drum)

음악 기능상의 특징으로는 북·틈북·호른·플루트·오카리나·목금 등에 의한 메시지의 전달을 들 수 있다.

이중 틈북이나 호른의 표출음을 모스 신호처럼 조합하는 방법은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도 보이는데, 단어(음높이 관계가 의미의 구별에 중요한 음조언어)의 음높이나 장단을 그대로 악기에 모방시키는 방법(예를 들면 토킹 드럼)은 아프리카 특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주양식의 특징으로는 즉흥연주, 응창(리더 대 그룹)이나 교창(그룹 대 그룹) 등 응답형식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 음악의 구조가 짧은 모티프 내지는 구(句)의 반복과 변주로 되어있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위와 같은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 중 여러 요소는 신대륙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 노예에 의해 보존되었으며, 유럽 음악과 혼합되어 아프로-아메리카 음악으로 다양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도 전통음악의 양식을 따른 새로운 작품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