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파드 왕조

아르파드 왕조

다른 표기 언어 Arpad dynasty

요약 9세기말부터 1301년까지 헝가리를 다스린 왕조.

이 왕조가 다스리는 동안 헝가리는 마자르 부족 연합체에서 동유럽 중부의 강력한 국가로 탈바꿈했다.

아르파드 왕조의 이름은 마자르족의 7개 부족이 889년 론 강 유역의 주거지에서 서쪽으로 이주할 때 그들을 이끌고 갈 지도자로 뽑은 아르파드(907 죽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자르족은 896년경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판노니아(또는 헝가리) 평야에 정착했고, 그후 반세기 동안 이웃 종족들을 습격해 전리품을 모았다. 그러나 신성 로마 황제 오토 1세에게 패배한(955. 8. 10, 레흐펠트 전투) 뒤 그들의 호전성은 다소 꺾였고, 아르파드의 증손자인 게자가 다스리는 동안(972~997) 서유럽과 우호관계를 확립했으며, 족장보다 왕의 권한을 우선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슈트반 1세(997~1038 재위)는 부왕의 업적을 더욱 발전시켜 헝가리 백성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시켰으며(1000), 트란실바니아까지 지배권을 확대했고(1003), 부족 정치 체제를 왕이 임명한 '백작'이 다스리는 백작령 제도로 바꾸었다.

또한 이슈트반은 모든 영토를 자유민의 점유지가 아닌 왕의 소유지로 선언함으로써 헝가리 군주들이 장차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슈트반의 후계자들은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숱한 싸움을 벌였지만 그 와중에도 헝가리를 지배하려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공격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특히 1063, 1074), 라슬로 1세(1077~95 재위)와 칼만(1095~1116 재위)은 헝가리의 지배권을 크로아티아에까지 확대했다.

12세기에는 라슬로 2세(1162~63 재위)와 이슈트반 4세(1163~65 재위)가 그들의 조카인 이슈트반 3세(1162~72 재위)를 상대로 왕위계승전쟁을 벌였는데, 이에 개입한 비잔틴 황제가 헝가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슈트반 3세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벨로 3세(1173~96 재위)가 헝가리 군주의 독립성과 권위를 다시 확립했다.

벨로가 다스리는 동안 아르파드 왕조의 권세는 절정에 달했다.

헝가리 왕조는 왕실 소유지에서 얻는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세르비아와 갈리치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해 헝가리를 유럽 중동부 지역에서 가장 크고 만만찮은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벨로가 죽은 뒤 헝가리 군주국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임레(1196~1204 재위)와 그의 동생 엔드레 2세(1205~35 재위)는 지지자들에게 많은 땅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왕실의 재산과 권력이 크게 줄었다.

또안 엔드레는 귀족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금인칙서) 백작령에 대한 귀족들의 지배권을 허용함으로써 군주의 힘을 더욱 악화시켰다.

몽골족이 헝가리를 침략하여 파괴한(1241~42) 뒤 벨로 4세(1235~70 재위)는 재건을 장려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방 유지들에게 광범위한 특권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어 왕권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의 아들인 이슈트반 5세(1270~72 재위)는 쿠만족(유목 생활을 하는 투르크족의 일파)의 공주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라슬로 4세(1272~90 재위)가 왕이 되자 헝가리 왕실의 권위는 더욱 떨어졌다.

라슬로 4세는 합법적인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엔드레 2세의 손자 엔드레 3세(1290~1301 재위)가 그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이미 세력이 상당히 줄어든 아르파드 왕가의 혈통은 결국 끊어졌다. 그후 아르파드 왕가와 인척관계를 맺은 여러 왕실들이 서로 헝가리 왕위를 차지하려고 다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