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주의

급진주의

다른 표기 언어 radicalism , 急進主義

요약 기존상태나 기존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사고 및 행동방식.

철학사상으로는 제러미 벤담이나 J. , J. S. 등의 관념연합설,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 합리주의, 공리주의, 개인주의 등을 가리키지만 정치상의 급진주의는 시대와 사회상황에 따라 형태를 달리한다. '급진주의'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정치운동 및 정당을 존속시켜온 나라로서 프랑스가 있다.

영국에서는 조지 3세 시대에 언론·출판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존 윌크스를 중심으로 최초의 급진파가 생겨났다. 급진파의 목표는 교권주의에 반대하고 권력의 개인적인 전횡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독립혁명이 일어나자 급진파는 식민지 주민의 입장에 섰고 프랑스 혁명 때에도 혁명을 긍정하고 사회개혁을 주장했다.

19세기가 되자 급진주의 운동은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과 결부되어 1832년의 선거법 개정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급진주의는 중산계급의 운동으로부터 점차 민중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1870년대의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스스로를 '급진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조지프 체임벌린이 급진적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양성화된 사회주의 정당이 급진파들을 흡수하면서 급진주의운동은 독자성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력이 약화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시대에 르드뤼 롤랭 등 공화주의자들은 급진파임을 자칭하면서 보통선거제의 관철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의 급진주의는 학설이라기보다 프랑스 혁명의 세속성과 자유·평등을 계승하려는 정신자세에 불과했다. 급진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운동이 정당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1902년의 소위 '급진공화주의와 급진사회주의의 정당'(급진당)이 결성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 정당은 국회의원과 지방유력인사들을 위주로 하는 산만한 집단이었고 반교권주의와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는 의회주의 정당이었다.

급진당은 좌익세력을 결집시키는 중간정당으로서 1902~14년에 그 주요간부들을 상당수 입각시켰다. 사회주의 정당이 자립하고 공산당이 창설(1920)됨에 따라 중간정당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화된 급진당은 다수파 정치 공작의 핵심을 이루는 정당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에리오, 달라디에, 맹데스 프랑스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 급진주의는 19세기 후반의 극단주의자들을 일컬었다. 북동부 산업가들의 이익을 대표하여 노예제의 철저한 폐지를 주장했던 공화주의자들과 역설적으로 농업의 이해나 사회화를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들이 급진주의자로 불리웠다. 한편 스위스에서는 1830년 가톨릭의 교권주의에 반대하는 급진당이 결성되어 중앙집권적인 헌법개정을 추진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급진주의란 부르주아 계급이 근대 시민혁명과정에서 취했던 다소 철저한 민주주의적 태도를 의미한다. 레닌이 '공산주의 운동의 소아병'이라고 평했고 '소(小)부르주아 봉기주의' 혹은 '좌익 교조주의'라고도 불렸던 급진주의의 개념은 노동자의 당을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방해하는 근본적으로 좌익 기회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 특성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