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디에

달라디에

다른 표기 언어 Édouard Dalad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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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4. 6. 18, 프랑스 카르팡트라스
사망 1970. 10. 10,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뮌헨 협정(1938. 9. 30)에 조인한 프랑스의 총리.

이 협정으로 나치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다.

1919년 보클뤼즈 주에서 급진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파리에서 명성을 얻었다.

1924년 6월 제1차 에리오 내각의 식민장관이 되었으며 격동기인 1925~33년 여러 내각에서 육군장관·교육장관·공공사업장관 등을 역임했다. 1933년 1월 31일 자신의 내각을 구성했지만 1933년 10월까지밖에 존속하지 못했고 1934년 1월의 두번째 내각은 불과 4주일 만에 붕괴되었다. 달라디에는 많은 관료직을 전전하면서 자신이 이끄는 급진당을 레옹 블룸의 사회당 및 공산당과 제휴시켜 인민전선(1935)을 결성했다.

국제정세가 악화되자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과 손잡고 아돌프 히틀러와 뮌헨 협정을 체결했다.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로 탈출하여 망명정부를 세우려 했지만 비시 프랑스의 지시로 모로코에서 체포되었다.

1942년 2월 리옹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를 비롯한 피고들은 페탱일파도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인들에게 넘겨진 달라디에는 1945년까지 전쟁포로로 남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다시 하원의원(1946~58)이 되었고 1953년에는 소멸해가는 급진당의 당수로 취임했다. 1958년 드골이 만든 새 헌법에 반대한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