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데텐란트

주데텐란트

다른 표기 언어 Sudetenland

요약 수데티(주데텐) 산맥 주변에 있는 보헤미아·모라비아의 북부지역.

제1차 세계대전말에 독자적인 한 지구로 확정되었으며, 당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독일인들은 체코슬로바키아로 편입되었다. 그뒤 이 지역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사이의 끊임없는 불화의 진원지로 바뀌었고, 1938년 히틀러에 굴복한 뮌헨 회담 참가자들에 의해 독일 영토가 되었다.

주데텐란트(Sudetenland)
주데텐란트(Sudetenland)

독일의 주데텐란트 합병은 주로 주데텐란트 독일인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들은 1919년 주데텐란트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지배를 받도록 한 생제르맹 조약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뒤 1930년대 중반 '주데텐란트 독일(또는 나치)당'이 전개한 독일 민족주의와 반체코슬로바키아·반유대주의에 점차 찬동하는 반응을 보였다. 콘라트 헨라인이 주도한 이 당은 체코슬로바키아 관리들이 이곳에서 실시한 인종차별정책뿐만 아니라 실업자들의 불만(이 지역 경제는 상당히 산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공황으로 거의 정체상태였음)을 이용해 1935년 5월 의회 선거에서 주데텐란트 독일 유권자의 약 2/3의 지지를 얻어 체코슬로바키아 의회에서 2번째로 큰 다수당이 되었다.

그뒤 활동이 활발해진 나치주의자들은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합치는 데 기본 목표를 두고 적대적인 돌발사고와 선동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그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를 당황하게 했으며 영국과 프랑스로 하여금 주데텐란트가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을 독일에 내주는 일이 있더라도 극단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들을 설득하게 했다.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주데텐란트 독일인들의 불만에 대해 비(非)나치 집단이 만족할 정도로 응해주고, 헨라인의 요구사항(1938년 4월에 제기된 것으로 주데텐란트의 완전한 자치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친독일 외교정책 채택을 요구)을 거의 다 들어주었음(1938. 9)에도 불구하고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 조정은 프랑스·영국·이탈리아·독일이 참가한 뮌헨 회담(1938. 9. 29~30)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게 10월 10일까지 주데텐란트를 양도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냄으로써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체코슬로바키아는 주데텐란트를 되찾아 독일 주민 대부분을 쫓아내고 체크인들이 다시 살게 했다(→ 뮌헨 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