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가곡

다른 표기 언어 歌曲 동의어 예술가곡, 리트, Lied

요약 1904년 창가 형태로 만들어진 김인식의 〈학도가〉는 최초의 서양음악 전문가의 창작품이라는 점에서 가곡을 낳게 한 창작음악의 효시로 본다. 1924년 창작된 홍난파의 〈봉선화〉역시 기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창가가 예술적으로 승화된 최초의 창작곡이라는 점에서 한국 가곡의 효시로 볼 수 있다. 가곡은 1920년대부터 꾸준히 작곡되고 있는데, 가사는 자연을 노래하는 내용이나 이별·고향·그리움 등을 소재로 작곡된 서정가곡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순수성의 추구'가 가곡을 작곡하는 데 방향성처럼 되어 있어 그런 내용의 시를 취하거나 그런 내용으로 작곡한다. 많은 서정시인들의 시가 작곡자에 의해 가사화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김소월과 이은상을 비롯하여 박화목·박목월·조지훈·조병화 등의 시가 많이 애용된다.

예술가곡이라고도 한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서양의 민요·찬송가가 도입되어 만들어진 창가라는 계몽적 내용의 성악곡이 1920년대 한국 최초의 가곡이라고 불리는 〈봉선화〉를 기점으로 가곡이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나누어졌다. 창가에서 나온 여러 형태의 장르는 크게 3가지인데, 가곡·창작동요(전래동요와 구별됨)·대중가요이다. 근대 창작성악곡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이 장르들은 독립된 장르로 발전되긴 했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외래음악 양식의 도입과 관련하여 전통성악곡인 가곡 '만년장환지곡'이나 민요·잡가 등과 양식적인 면에서 구별된다는 점이다. 또한 민중의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고 보급되는 민요·잡가 등이 가진 구비전승의 유동성·역동성과는 반대로 가곡은 작곡자에 의해 창작되고 악보화됨으로써 유형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근대 한국가곡은 이러한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1904년 창가의 형태로 만들어진 김인식의 〈학도가〉는 최초의 서양음악전문가의 창작품이라는 점에서 가곡을 낳게 한 창작음악의 효시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1924년 창작된 홍난파의〈봉선화〉역시 기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창가가 예술적으로 승화된 최초의 창작곡이라는 점에서 한국 가곡의 효시로 볼 수 있다.〈봉선화〉가 아직 내용에 있어서 계몽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정형시적 율동으로 규칙적인 리듬과 박자에 의존해 있다면 1933년 작곡된 김동진의 〈가고파〉는 가곡(특히 서정가곡)의 양식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본격적인 예술가곡의 전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백병동(白秉東)의〈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처럼 현대음악적 기법으로 가곡을 창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곡은 1920년대부터 꾸준히 작곡되고 있는데, 가사내용은 해방공간에서의 김순남(金順男)·이건우(李建雨)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자연을 노래하는 내용이나 이별·고향·그리움 등을 소재로 작곡된 서정가곡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순수성의 추구'가 가곡을 작곡하는 데 방향성처럼 되어 있어 그런 내용의 시를 취하거나 그런 내용으로 작곡을 한다. 많은 서정시인들의 시가 작곡자에 의해 가사화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김소월과 이은상(李殷相)을 비롯하여 박화목·박목월·조지훈·조병화 등의 시가 많이 애용된다. 작사자로 많이 등장하는 이은상의 경우는 스스로 작사를 해준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월북작가 정지용 등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도 많다.

독일 가곡에 대해서는 '리트', 이탈리아 가곡은 '칸초네', 프랑스 가곡은 '샹송' 항목을 참조.

특징

개요

가곡의 특징을 연대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1920년대부터 가곡을 작곡했던 홍난파·현제명(玄濟明) 등은 가곡의 개척자들이다. 1933년 홍난파가 〈조선가요작곡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가곡집에는 〈봉선화〉를 비롯하여 〈고향의 봄〉·〈옛 동산에 올라〉·〈성불사의 밤〉·〈장안사〉 등이 있다. 또한 1931년과 1933년 발표한 〈현제명 가곡 제1집〉·〈현제명 가곡 제2집〉에는 〈니나〉·〈나물캐는 처녀〉·〈조선의 노래〉·〈오라〉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레코드 문화가 시작되면서 성악가들이 직접 녹음한 레코드가 판매되었다.

안기영은 1925년 이미 음반 〈내 고향을 리별하고〉를 낸 적이 있고, 1931년에는 〈안기영 작곡집 제1집〉·〈조선민요집 제1집〉, 이후 〈안기영 작곡집 제2집〉을 냈다. 여기에는 그가 편곡한 〈양산도〉·〈방아타령〉과 자작곡 〈그리운 강남〉 등이 녹음되어 있다. 현제명도 자신이 직접 부른 〈현제명 가곡집〉을 레코드로 냈다. 이러한 작품들은 1930년대에 발표되었지만 실제로 작곡된 때는 1920년대이다. 이 시기 작곡경향은 정형시에 맞춘 단순한 가곡으로 아직 예술가곡으로서의 모습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아 창가의 틀을 깨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보통 식민지 민족의 설움을 달래며 한(恨)을 심는 내용이나 자유와 독립을 희구하는 내용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정도이다.

1930년대

작곡가 김동진·이흥렬(李興烈)·김세형(金世炯) 등의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에 나온 〈가고파〉·〈내마음〉·〈수선화〉·〈선구자〉 등을 비롯한 가곡들은 서정성과 낭만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의 가곡은 1920년대보다 질적으로 고양된 형식을 띠었고 한국 가곡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1940년대

김대현·김순애(金順愛)·김성태(金聖泰)·윤이상(尹伊桑)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곡들의 낭만적인 경향과 김순남·이건우 등의 작곡가들이 만든 가곡들의 사실주의적 경향을 특징으로 한다.

김성태의 〈산유화〉나 윤이상의 〈고풍의상 古風衣裳〉은 서양음악적 어법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창작방법을 구사한 수준높은 가곡으로서 한국 이곡의 독창성을 구현하려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순남의 〈탱자〉·〈철공소〉 , 이건우의 〈빈대〉 등은 8·15해방 이후에 발표된 것이지만 다른 작품들과 달리 가곡에 있어서 사실주의 경향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1950년대

6·25전쟁으로 인해 전시가요·군가의 작곡이 많았던 시기이다.

김동진·윤용하 등의 작곡가들이 〈행군의 아침〉·〈승리의 노래〉 등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정신을 드높이기 위한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에도 김성태의 〈이별의 노래〉, 김대현의 〈자장가〉, 윤용하의 〈보리밭〉, 조념의 〈보리피리〉 등의 유명한 서정가곡이 많이 만들어졌다.

1960년대

젊은 작곡가들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어 가곡 제1세대와 자리바꿈을 한 시기이다.

정회갑·김달성·구두회·김진균·백병동 등이 그 예이다. 당시 장일남의 〈비목〉·〈기다리는 마음〉과 김성태의 〈나그네〉·〈못잊어〉 등이 나와 크게 애창되었다.

1970~80년대

작곡가 금수현·김규환·변훈·김영준·나운영 등의 창작활동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1970년대는 창작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였고 1980년대는 가곡 창작의 성숙기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행사용이 많고 작곡방식에서 구태의연함을 벗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