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영

안기영

다른 표기 언어 安基永
요약 테이블
출생 1900(광무 4). 1. 9, 충남 청양
사망 1980
국적 한국

요약 성악가·작곡가.

독실한 그리스도교인인 부모 사이에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5세 때 배재학당에서 악보 읽는 법과 풍금과 코르넷 연주법을 배우면서 음악에 입문했고 당시 음악교사인 김인식·이상준의 영향을 받았다.

191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3·1운동 만세시위에 가담하여 일본 경찰에게 잡혔다가 풀려났다. 그후 잠시 중국에 갔다가 1923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조교로 있으면서 이듬해 〈내 고향을 리별하고〉를 녹음했다. 1926년 미국의 엘리슨화이트음악대학에 유학한 뒤, 1928년 귀국하여 1932년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 성악과교수로 있으면서 성악·음악사·음악이론 등을 가르쳤다. 이때 이화여자전문학교 합창단 지도를 맡아 교내발표와 전국순회연주 활동을 했다.

1931년 6월과 11월에는 콜롬비아레코드사에 민요합창곡 〈안기영 작곡집 제1·2집〉을 취입했다. 그의 민요에 대한 관심과 작품 경향은 1940년대 〈콩쥐팥쥐〉·〈견우직녀〉·〈에밀레종〉 등에서 보이듯이 향토가극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 전국순회공연에서 합창곡으로 편곡한 〈양산도〉·〈방아타령〉 등이 있다. 해방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의 성악부 위원장,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50년 6월 18일 부인 김현순과 월북한 뒤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있다가 81세로 죽었다.

주요작품으로 가곡 〈그리운 강남〉·〈이별의 노래〉와 해방가요 〈해방전사의 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