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카트 역사

무스카트 역사

무스카트 지역에는 기원전부터 사람이 정착했으며, 고대 그리스 지리학 기록에도 무스카트로 추정되는 지역이 언급된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오늘날 무스카트에 해당하는 지역을 '아미토스쿠타(Amithoscuta)' 또는 '숨겨진 항구'라는 뜻의 '크립투스 포르투스(Cryptus Portus)'로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1세기 아라비아 내륙의 아랍 유목민 부족이 오만 해안으로 진출했으며, 4세기에는 페르시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무스카트를 점령했다.

현대 무스카트의 역사는 16세기 포르투갈 점령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이전 오만 지역의 주요 항구는 소하르(Sohar)와 칼하트(Qalhat)였으며, 무스카트는 인도양과 중동 사이 무역로에 위치했으나 큰 중요성을 가진 도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1507년 신항로를 개척해 인도양으로 진출한 포르투갈의 아폰소 드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가 무스카트를 점령하고 인도양을 통제하기 위한 근거지로 삼으면서 무스카트는 칼하트를 제치고 인도양 해역과 오만 지역의 주요 도시로 성장한다. 1552년 오스만 제국은 무스카트를 일시적으로 점령했으나 다시 포르투갈이 탈환했으며, 포르투갈 세력은 1587년과 1588년 인도양과 걸프해의 해적으로부터 무스카트를 지키기 위해 요새를 건설했다. 1622년 페르시아가 포르투갈의 또다른 인도양 근거지인 호르무즈해협을 점령하면서 무스카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포르투갈령 무스카트를 위협하는 세력은 오만 내륙에서도 나타났다. 오만 내륙의 부족들을 통합한 야루바 왕조는 1630년 무스카트를 최초로 공격한 뒤 1650년에는 무스카트를 함락하는 데 성공한다. 포르투갈군은 무스카트를 탈환하기 위해 이후에도 계속 공격을 시도했으나 결국 1697년 무스카트를 완전히 포기했다. 야루바 왕조는 무스카트를 점령한 이후에도 내륙의 루스타크(Rustaq)를 수도로 삼았으나, 무스카트를 중심으로 인도, 걸프해, 동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무역로를 구축해 부를 쌓았다.

1738년 야루바 왕조가 계승 분쟁으로 약화한 틈을 타 페르시아가 무스카트를 점령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지배는 소하르 총독이자 알 부사이드(Al Busaid) 왕조의 시조인 아흐마드 이븐 사이드 알 부사이디(Ahmad ibn Said Al Busaidi, 1710-1783, 재위 1744-1783)가 무스카트를 탈환하고 오만 지역에서 페르시아 세력을 축출하면서 종식되었다. 야루바 왕조와 마찬가지로 알 부사이드 왕조 또한 내륙의 루스타크를 수도로 삼았으나, 1786년 수도를 무스카트로 옮기며 오만의 수도로서 무스카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술탄 사이드 이븐 아흐마드(Said ibn Ahmad, 1803년 사망, 재위 1792-1804) 시기 무스카트는 걸프해의 진주, 인도의 곡물과 직물, 내륙의 대추야자, 노예, 말, 설탕 등을 취급하며 인도와 동아프리카, 걸프해 지역을 연결하는 아우르는 무역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많은 인도인과 페르시아인들이 무스카트에 상인 또는 용병으로 정착하면서 다문화 도시로 변화했다.

무스카트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쇠퇴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영국노예무역을 금지하면서 무스카트는 중요한 무역로를 상실했으며, 증기선과 전신 등 현대 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인도양 무역로의 쇠퇴를 가져왔다. 사이드 이븐 술탄(Said ibn Sultan, 1791~1856, 재위 1806~1856)은 수도를 무스카트에서 동아프리카 해안의 잔지바르(Zanzibar)로 옮겼으며 이는 무스카트의 쇠퇴를 가속했다. 한편 알 부사이드 술탄의 권위를 거부한 내륙의 이바디파 부족들은 그들만의 지도자인 이맘(Imam)을 선출하고 무스카트와 해안지역을 지속적으로 공격했으며, 결국 1920년 영국의 중재 아래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이 분할되었다. 합의에 따라 알 부사이드 왕조의 술탄은 무스카트를 중심으로 한 해안지역을, 이바디파 이맘은 오만 내륙지역을 지배하기로 했으며, 배후지를 상실한 무스카트는 인접한 마트라흐에 경제 중심지로서 입지를 빼앗겼다. 19세기 무스카트 구시가지의 인구는 50,000명에서 8,000명까지 감소한 반면에 마트라흐의 인구는 14,000명까지 성장했다. 무스카트의 쇠퇴는 사이드 이븐 타이무르(Said ibn Taimur, 1910~1972, 재위 1932-1970) 치세 아래 가속되었다. 1966년 사이드 술탄은 수도를 사실상 남부의 살랄라(Salala)로 옮겼으며, 무스카트는 술탄의 관심에서 벗어나면서 쇠퇴했다. 카부스 빈 사이드(Qaboos ibn Said, 1940~2020, 재위 1970~2020) 술탄 치세 시기에 무스카트에는 은행 하나와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 하나만이 있을 정도였다.

무스카트는 1970년 사이드 술탄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른 카부스 술탄의 치세기에 현대적 도시로 발전했다. 1973년 무스카트국제공항(Muscat International Airport)이 건설되었으며 학교, 무스카트 광역원을 연결하는 도로, 전력시설, 현대적 항구 등이 확충되었다. 카부스 술탄의 개발 아래 무스카트 구시가지는 별개의 도시였던 마트라흐와 알시브(Al-Seeb)까지 확대되어 무스카트 광역권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무스카트는 왕궁과 의회, 정부 부처 건물, 오만 유일의 국립 종합대학교와 대형 병원 등이 위치하여 정치, 행정, 경제, 문화, 보건, 교육 등에서 중심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도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