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부스 빈 사이드

카부스 빈 사이드

[ Qaboos bin Said ]

요약 오만의 전 국왕으로서, 1970년 7월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술탄이었던 아버지 사이드 빈 타이무르(Said bin Taimur)를 축출하고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오만 사회의 안정과 경제 부흥을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외교적으로는 중동 지역의 분쟁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원어명 Qābūs ibn Saīd
출생-사망 1940.11.18 ~ 2020.1.11

오만 남부 도파르(Dhofar) 지방의 주도 살랄라(Salalah) 출생으로 어린 시절 인 에게 교육을 받은 후 16세에 영국 서퍽(Suffolk) 주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하여 5년 동안 공부하였다. 이 시기에 특히 승마와 고전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1962년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보병연대의 장교로 임관하였고, 독일에서 1년간 근무하였다.

1964년부터 6년간 아버지인 술탄에 의해 살랄라의 왕궁에서 사실상의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으며, 1970년 7월 군대를 이끌고 궁정 를 일으켜 아버지를 축출하고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아버지 사이드 빈 타이무르는 영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는데, 이때의 쿠데타는 실질적으로 오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의 조정에 의한 것이었다. 즉위 직후인 1970년 노예제를 폐지하였고, 1971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근대화와 민주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총리, 국방장관, 외무장관, 재무장관을 겸하였다. 오만은 군주인 술탄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국가로, 행정을 담당하는 내각도 술탄에 의해 구성된다.

1996년 오만 기본법을 제정 및 반포하여, 젠더·출신·피부색·언어·종교·종파·거주지·사회 계층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이란을 포함한 중동 국가는 물론 서구 국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2015년 이란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중재하였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이 카타르와의 단교에 동참하였던 카타르 외교 위기에서도 중립을 지켜 균형추의 역할을 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의 시아파 반군의 협상을 중재하기도 하였다. ‘누구와도 친하고 적은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균형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으며, 오만 사회의 안정과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과는 1996년, 25년간의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매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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