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하트 고대도시

칼하트 고대도시

[ Ancient City of Qalhat ]

요약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만의 문화유산.
칼하트 고대도시

칼하트 고대도시

국가 오만(Oman)
지정일 2018년
분류 문화
좌표 N22 41 42.8 E59 22 41.2
면적 75.82 ha

오만의 북동쪽, 수르(Sur)의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고대 도시 유적으로 내성벽과 외성벽으로 둘러싸여있는 칼하트 고대 도시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호르무즈(Hormuz) 왕국의 통치 기간이었던 11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아라비아 반도 동부 해안의 주요 항구 도시로써 발전하였다. 아라비아 동부 해안 지역과 동아프리카,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사이의 교류와 무역에 대한 독특한 고고학적 증거를 품고 있는 고대 도시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만에서 다섯 번째로 선정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면적은 0.75㎢이며 완충 지역의 면적은 약 1.7㎢이다.

칼하트는 인도양에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항구도시이자 호르무즈 왕국 제2의 수도였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뱃길은 북서쪽으로는 페르시아 만, 남서쪽으로는 예멘, 동쪽으로는 인도로 이어졌으며 칼하트는 무역의 중심지로 큰 번영을 누렸다. 도시가 명성을 떨치자 유럽과 아랍, 아시아에서 여러 여행가들이 이곳을 찾았다. 13세기에 이 도시를 방문한 이탈리아의 상인이자 여행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이곳을 칼라투(Calatu)라 명명하였다. 14세기에는 모로코 출신의 아랍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Ibn Battuta)가 이 도시를 방문했는데 그는 이 도시에 매우 훌륭한 시장과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그는 이 모스크가 바하알딘 아야즈(Baha al-Din Ayaz)왕의 아내인 비비 마리암(Bibi Maryam)에 의해 지어졌으며 유약으로 물들인 타일을 이용한 카샤니(qashani) 기법의 모자이크로 꾸며진 벽이 인상적이라 전했다. 15세기에는 중국 명나라의 장군이자 대항해가인 정화(鄭和, Zheng He)가 이곳을 방문하였다. 

당시 이 도시에서 거래된 주요 무역 품목으로 아라비아에서 들여 온 경주마와 대추야자, 진주, 소금 등이 있었으며 인도에서 들여 온 옷감과 금속, 향료와 쌀 등도 활발히 거래되었다. 중국의 도자기와 인도의 도기 등도 발굴되었다. 방어용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당시 수 많은 상점과 시장, 주택 등으로 북적이며 번성하였다. 무역을 위하여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섞여 지낸 만큼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주거 형태나 건축 요소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이 도시에 남은 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훌륭한 것은 비비 마리암의 마우솔레움(Bibi Maryam mausoleum)으로 돔 지붕은 파괴되었으나 건물의 형태는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모스크이자 무덤 건축물인 비비 마리암의 마우솔레움은 당시 이란과 중앙 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남편인 바하알딘 아야즈 왕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이 지역을 다스렸던 비비 마리암에 의해 지어졌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지만 아야즈 왕이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호르무즈 왕가의 왕족들은 칼하트에서 지내기를 즐겼는데 이 같은 이유에서 칼하트는 호르무즈 왕국의 두 번째 수도라는 별칭을 가지기도 했다. 왕족들이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도시인 만큼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곳의 도시 계획 구조와 발굴된 유적들은 호르무즈 왕국의 문화와 전통, 생활 방식 등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칼하트는 이 지역의 무역 거점이 오만의 오늘날 수도인 무스카트(Muscat)로 이동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1507년 포르투갈이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현재까지는 칼하트 고대도시 유적의 일부만이 발굴된 상태로 고고학적 잠재성이 무한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역참조항목

무스카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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