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화학

[ chemistry ]

화학(化學)은 물질의 정체와 변환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의 핵심 분야이다. 화학은 물질의 정체와 성질을 원자분자의 수준에서 설명하고,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는 화학 반응의 특성을 연구한다.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코넬대학교의 로알드 호프만에 따르면, 화학은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등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정체와 작동원리를 밝혀내는 '중심과학'으로 생명과학, 지질학, 환경과학, 공학, 의학, 약학, 농학 등의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용된다. 또한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고, 안전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생활과학'이다.1)

인류는 50만 년 전 불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화학적 변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화학은 수천 년 전부터 여러 문명권에서 발달했던 다양한 형태의 '연금술'(鍊金術, alchemy)이나 '연단술'(煉丹術)에서 비롯되었고, 18세기 앙투안 라부아지에(1742-1794)와 존 돌턴(1766-1844) 등에 의해 근대 화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화학은 자연과 인간의 정체와 생명 현상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첨단과학으로 발전했고, 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화학산업은 인류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소재와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풍요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삶은 화학에 의해 마련된 물질적 기반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화학 기술의 무분별한 오용과 남용에 의한 환경 오염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화학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전 지구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학 기술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목차

어원

영어에서 화학을 뜻하는 'chemistry'는 연금술을 뜻하는 'alchemy'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lchemy'는 이집트어로 이집트를 뜻하던 'Chemi' 또는 'Kemi'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함께 주조하다'(cast together)를 뜻하던 아랍어 al-kīmīā 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흔히 과 같은 평범한 금속을 과 같은 귀금속으로 변환시키려 했다고 알려진 서양의 연금술은 불로장생의 약품을 만들려던 동양의 연단술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화학뿐만 아니라 고대의 야금술, 철학, 점성술, 천문학, 의술, 신비술 등을 모두 포함했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일본의 대표적인 난학자(蘭學者)였던 우다가와 요안(宇田川榕菴, 1798~1846)이 처음으로 네덜란드어 'Chemie'(헤이미)의 발음을 따라 화학을 '세이미'(舎密; せいみ)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1840년에 서양 화학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내편 18권과 외편 3권으로 구성된 《세이미 가이소》(舎密開宗)를 발간했다. 우다가와는 '산소'(酸素), '수소'(水素), '질소'(窒素), '탄소'(炭素), '백금'(白金), '산화'(酸化), '환원'(還元), '포화'(飽和), '용해'(溶解). '분석'(分析), '원소'(元素) 등의 화학 용어도 만들었다.

우다가와 요안의 《세이미 가이소》 (1840)에 소개된 라부아지에의 실험 ()

'화학'(化學)이라는 용어는 1856년 영국 선교사 A. 윌리암슨(A. Williamson, 1829-1890)가 《격물탐원》(格物探源)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2) 1857년 상하이의 묵해서관(墨海書館)에서 발간했던 중국어 신문 《육합총담》(六合叢談)에서 영국 선교사 알렉산더 와일리(Alexander Wiley)가 소개한 중국인 번역가 왕도(王韜)의 일기에도 '화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1871년에는 청(清)의 화학자 서수(徐寿)가 《Well‘s Principles of Chemistry》를 번역한 《화학감원》(化学鑑原)도 있다. 영국의 '화학'은 일본으로 전해져서 '세이미'를 대체하여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에도의 난학자 가와모토 고민(川本幸民)이 1861년 《화학신서》(化學新書)를 발간했다.

서수의 《화학감원》(1871) 표지 ()

화학의 역사

화학의 역사는 인류가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임산연료를 공기 중의 산소와 함께 연소시켜 불을 피우기 시작했던 5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학적으로 산화 반응에 해당하는 연료의 연소는 육체적으로 연약한 인간이 거칠고 위험한 자연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불을 사용하여 어둠을 밝히고, 추위와 맹수를 피할 수 있게 되었고, 딱딱하거나 부분적으로 상한 먹거리도 안전하게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인도, 중국 등의 고대 문명에서는 불을 이용해서 숯과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했고, 순수한 원소 상태로 존재하는 구리주석을 함께 녹여서 청동을 만드는 기술도 개발했다. 산화물이나 황화물로 산출되는 광석을 화학적으로 환원시켜 철과 같은 순수한 금속을 만드는 야금 기술도 개발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만물이 물, 불, 흙, 공기로 되어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했고, 기원전 5세기 경의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atom)가 존재한다는 '원자설'을 제시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으로 만들고, 생명의 영약(elixir)을 만들겠다는 '연금술'이 등장했다. 비잔틴 시대에는 증류법을 비롯한 실용적인 화학 기법이 개발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만물이 음(陰)과 양(陽), 그리고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으로 구성된다는 '음양오행설'은 동양 사상의 핵심 기반으로 발전했고, 불로장생을 위한 연단술도 등장했다.

17세기 경험주의 철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과학적인 화학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체의 부피와 압력 사이의 관계를 밝혀낸 영국의 로버트 보일(1627-1691)은 연금술을 근대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기반을 마련했다. 18세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는 질량보존 법칙을 발견하여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 돌턴은 현대적 '원자설'을 제시하고, '분압 법칙' 등을 발견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소들의 존재가 밝혀지기 시작했고, 1875년 러시아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1834-1907)가 최초의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그러나 원자의 존재는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브라운 운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논리적으로 확인되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뵐러(1800-1882)가 1828년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요소를 처음 합성하면서 시작된 유기 화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다양한 합성 염료와 의약품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원자와 분자의 구조를 핵심으로 하는 현대 화학은 1897년 영국의 J. J. 톰슨(1856-1940)이 '전자'를 발견하고, 20세기에 양자 역학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분자와 반도체 등의 다양한 화학 소재가 개발되면서 인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문명으로 발전한 20세기는 '화학의 세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화학의 주요 개념

원소원자: 원소는 고유한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한 종류의 원자들만으로 구성된 물질을 뜻한다. 2016년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소의 종류는 118종이다. 그 중 우라늄(U)을 포함한 92종은 지구의 자연에서 발견되고, 나머지 26종은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만 합성할 수 있다. 원소들은 양자 역학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성질에 따라 '족'과 '주기'로 구분되는 주기율표로 정리한다.

화합물분자: 원소들의 화학 결합으로 결합된 분자로 구성되어 고유한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질을 뜻한다. 화합물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몸을 구성하고, 후손에게 유전 정보를 전달해주고, 생명 현상에 필요한 생리 작용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류는 자연에 존재하는 화합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화학의 발전으로 생활이나 산업에 필요한 화합물을 합성하는 기술도 갖게 되었다. 자연에 존재하거나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된 화합물의 종류는 1억 종이 넘는다.

• 화학 반응: 화합물은 적절한 반응 조건에서 새로운 화합물로 변환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기존의 화학 결합이 끊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화학 결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화학 반응에서는 반응물과 생성물의 질량이 변하지 않는 '질량보존 법칙'이 성립한다. 화학 반응의 과정에서 열이 흡수되거나 방출되기도 하고, 전류가 흐르도록 만들 수도 있다. 화학 반응의 속도는 매우 느린 경우도 있고, 화약 폭발의 경우처럼 매우 빠른 경우도 있다. 염기의 반응에서처럼 화학 반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화학 평형에 도달하기도 한다.

• 질량보존 법칙: 화학 반응의 과정에서 반응물질은 모두 생성물질로 변화되고, 물질이 사라지거나 생겨나지 않는다는 법칙으로 1774년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1743-1794)가 제시했다. 핵분열이나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일정 성분비 법칙: 한 화합물을 구성하는 성분 원소들의 질량비는 항상 일정하다는 법칙으로 1799년 프랑스의 화학자 요세프 프루스트(1754-1826)가 제시했다.

배수 비례 법칙: 2종류의 원소 A와 B가 2종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일정량의 A와 결합하는 B의 질량 사이에는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한다는 법칙으로 1803년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1766-1844)이 처음 제시했다.

세부 분야

화학은 관심을 가진 화합물의 종류, 연구 방법과 목적 등에 따라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세부 분야로 구분한다.

  • 물리 화학: 원자와 분자의 성질 및 반응에 대한 기본적인 물리학적 근거를 밝혀낸다. 열역학, 반응 속도론, 양자 화학, 통계 열역학, 분광학, 전기 화학 등의 이론과 실험을 활용한다.
  • 유기 화학: 탄소의 화합물인 유기 화합물의 성질과 반응을 연구한다.
  • 무기 화학: 무기 화합물의 성질과 반응을 연구한다. 전통적으로 유기 화합물로 분류되는 탄소의 화합물을 제외시켰으나 유기금속 화학이 발전하면서 무기 화합물과 유기 화합물의 구분은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 분석 화학: 다양한 분석 장비와 기술을 이용해서 시료에 들어있는 화합물의 화학적 조성과 구조를 분석한다.
  • 고분자 화학: 분자량이 큰 천연 또는 합성 고분자를 합성하는 방법과 고분자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연구한다.
  • 생화학: 살아있는 생체를 구성하는 화합물과 생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과 화학적 상호작용을 밝혀낸다. 생화학은 분자 생물학과 유전학을 비롯한 생명 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밖에도 나노 화학, 고체 화학, 표면 화학, 광화학, 의약 화학, 물리유기 화학, 방사 화학, 재료 화학, 농화학, 대기 화학, 천체 화학, 환경 화학, 지질 화학, 해양 화학, 석유 화학 등의 다양한 세부 분야가 있다.

우리나라 화학계

일제 강점기의 고등교육기관은 대부분 일본의 식민지 관리를 위한 인력 양성과 일본 거류민의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1917년 연희전문학교의 수물과(數物科)에서 처음으로 현대적 화학 교육 과정이 개설되었고, 경성대학·경성공업전문대학·경성광산전문학교 등에 이공계 학과가 있었지만 한국인 학생의 수는 매우 적었다. 1941년에 설립된 경성제대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서는 1945년까지 7명의 졸업생(최한석·남기동·최윤식·박종면·정보영·이종근·양동수)을 배출했고, 해방 당시 2학년에는 오태호와 장세헌만이 학생으로 재학하고 있었다. 유일한 이공계 연구기관이었던 중앙시험소(1912년 발족)에도 한국인 직원은 많지 않았고, 화학공업도 흥남의 질소비료 공장이 전부였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1945년, 국내외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화학자는 50여 명뿐이었고, 박사 학위 소지자는 이태규(교토제대, 이학, 1931), 최황(오하이오주립대, 공학, 1934), 이승기(교토제대, 공학, 1939), 김양하(도쿄제대, 농학, 1943), 조광하(오사카제대, 이학, 1943) 등 5명뿐이었다. 해방 후에 문을 열었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는 이태규를 중심으로 김정수·김용호·김태봉·김순경·이종진·최규원·최상업·김내수 등이 활동했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는 경성방직 영등포공장 공장장이었던 김동일을 중심으로 이승기·안동혁·조광하·전풍진·성좌경·나익영 등이 활동했다. 1946년에 개편되어 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중앙공업연구소에도 최한석·양동수·이범순·신윤경·남기동·전풍진·성좌경·이종근·오신섭 등의 응용화학자들이 활약을 했다.

대한화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이태규(1902-1992) (출처: )

1946년 7월 7일 경성공업전문학교 회의실에서 창립된 '조선화학회'는 1949년 ''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규모가 큰 순수 학술단체로 성장했다. 대한화학회는 매년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 등의 학술지와 월간 소식지 «»를 발간하고, 화학술어 제정과 '화학시화전' 개최를 비롯한 화학 교육 및 대중화 사업 등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12개의 분과회와 12개의 지부에서도 활발한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한국화학공학회·한국고분자학회·한국공업화학회·한국세라믹학회와 함께 ''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한국물리학회·대한수학회·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한국지구과학학회연합회와 함께 '기초과학학회협의체'를 구성하여 기초과학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화학회는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과 아시아화학회연맹(FACS)의 주요 회원 단체이고, 국제화학올림피아드(IChO)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일본·미국·중국·프랑스·독일 등의 화학회와도 긴밀한 교류·협력 사업을 하고 있다.

참고 문헌

1.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로알드 호프만 저, 이덕환 역, 까치, 1996)
2. 朱诚身. "化学"一词的起源. 化学教育, 1988, 9(2): 57-58

동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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