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편, 용천 지리여행

제주편, 용천 지리여행

[ -Spring Geotravel ]

주제 사회, 지구과학, 환경
칼럼 분류 체험기사
칼럼 작성일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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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도(三多島). 바람, 돌, 여자가 많아 붙여진 제주도 별칭. 태풍 길목에 놓인 화산섬 특징을 잘 표현한 제주의 멋진 아이콘이다. 여행자들은 이 삼다를 떠올리며 제주를 음미한다.

삼다는 제주 스토리텔링의 핵심 소재다. 사실 ‘삼다’ 말고도 제주 아이콘은 수도 없이 많다. 용천, 곶자왈, 오름, 동굴, 화산층, 건천, 패사···. 이 모두 제주의 자연을 나타내는 주요 키워드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전부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약간의 지구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한다.

위의 것들 중 제일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단연 ‘용천(湧泉, spring)’이다. 제주의 용천은 제주 ‘사다(四多)’로 꼽힐 만큼 중요하다. 제주에선 지표수를 거의 볼 수 없다. 웬만큼 내린 빗물은 땅속으로 곧바로 들어가 지하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의 하천들은 남쪽 몇 개를 제외하곤 거의 말라있다(아래 사진). 물론 그들 발원지에 가보면 영락없이 많은 양의 용천수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제주 하천의 모습

일반적인 제주 하천의 모습 남부의 강정천 등을 제외한 제주 하천의 대부분은 평소 때 물이 흐르지 않는다. 강우 강도가 높은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땅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가기 때문이다. 수직 옹벽으로 만든 강둑이 인상적이다.

용천수를 잘 구경하기 위해선 ‘물 순환(water balance)’과 ‘물 수지(water budget)’ 개념을 알아야 한다. 전자는 지구상의 물은 돌고 돈다는 말이고 후자는 그 물이 일정량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한 지역의 물 환경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물이 잘 순환돼야 한다. 다행히도 제주는 아주 양호한 물순환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용천은 제주 물 순환의 결과물인 것이다.

본디 화강암이었던 제주도에 화산 활동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80만 년 전. 화산재층 위로 투수성(透水性, 물이 토양 속을 얼마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척도)이 높은 현무암과 해저 분출로 형성된 불투수성 응회암층이 겹겹이 쌓여 제주표 물탱크를 만들었다(아래 사진). 그 후 육지보다 연간 350mm 이상이나 많은 강수량과 45%나 되는 지하수 함양율이 땅속에 지하수를 가득 채워 넣었다. 제주 용천수는 제주의 기후와 지질, 지형이 만든 합작품이다.

제주 서부에 위치한 수월봉의 화산재층

제주 서부에 위치한 수월봉의 화산재층 강력한 수중 분화에 의해 쌓인 화산재층이 두껍게 쌓여 있다. 화산재층은 그 성분과 굳기 정도에 따라 투수층 또는 불투수층으로 구분된다.

용천은 우리말로 샘이라 하며 용천수는 샘물이라 부른다(아래 사진). 제주 사람들은 용천수를 ‘산물’로 불렀다. 용천수는 지하수면이 땅과 맞닿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제주에서는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용천수를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했었다. 상수도의 원수가 지하수인 점을 생각해 보면 용천수는 여전히 제주의 생명수인 셈이다.

논짓물

논짓물 제주 최대의 용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콘크리트로 막힌 왼쪽에는 용천수가, 오른쪽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있다. 이 사진은 현재의 논짓물 담수욕장 모습 이전의 것으로 용천수와 해수가 잘 분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제주 용천에 대한 정부 통계를 꺼내보자. 현재까지 밝혀진 제주의 용천은 모두 911개. 제주시에 540개, 서귀포시에 371개가 있다. 이중 841개인 92.3%가 해발 200m 이하의 저지대에 놓여 있으며, 5.4%(49개)가 중산간지대, 2.3%(21개)가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637개를 제외하면 수량이 부족하거나 고갈된 용천이 100개, 주변이 훼손되었거나 위치를 찾을 수 없게 된 용천이 174개나 돼 제주 용천은 꼼꼼하게 관리돼야 할 문화재인 것이다.

제주도 전역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량은 알 길이 없으나 해안에 위치한 122개 용천의 총 용출량은 하루 약 60만 톤으로 파악되고 있다. 성산지역 4곳의 하루 평균 용출량이 약 2만2천 톤인 반면, 서제주 지역 2곳의 하루 평균 용출량은 약 600톤으로 제주 동쪽 해안의 용천수량이 북쪽 해안의 용천수량보다 3배 이상이나 많다. 이렇듯 제주의 용천수량은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해안가 122개 용천 중 하루 500톤 이상의 용출량을 보이고 있는 곳은 76개. 그 중 성산에 위치한 용천 한 곳에서만 하루 2만 톤 이상의 물이 나오고 있다. 하루 2만 톤이라 함은 초당 1리터짜리 우유팩 230개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량이다. 참고로 집에서 수도꼭지를 아주 세게 하루 종일 틀어놨을 때 나오는 물의 양은 고작 100톤에 불과하다.

한편, 같은 용천이라 하더라도 계절에 따라 나오는 용출량 역시 달리 나타난다. 이는 제주의 우기와 건기를 용천수가 반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제주 지역의 월평균 용출량을 보면 5월보다 9월의 용출량이 7배 이상 많게 나타나고 있다.

제주의 용천수는 전부 같은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제주의 지하수는 부존형태에 따라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부터 상위지하수, 준기저지하수, 기저지하수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아래 그림). 상위 지하수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 있는 지하수를 말하며, 기저 지하수는 동부와 서부 지역 해안가에 위치한 지하수를 말한다. 또 준기저 지하수는 상위 지하수와 기저 지하수 사이의 지하수를 일컫는다. 제주 용천수는 그림 지하수 부존형태 모식도에서 보듯이 위의 세 가지 지하수가 각기 해안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지역에 따라 용천수의 근원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제주도 지하수의 부존 형태

제주도 지하수의 부존 형태 제주의 분화 역사를 반영해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부터 상위지하수, 준기저지하수, 기저지하수로 구분되고 있다(인용: ).

참고로 기저 지하수는 담수와 염수의 비중 차이로 인해 염수 위에 놓인 지하수를 말한다. 예컨대 기저 지하수의 해발고도가 1m일 경우 지하수와 해수의 경계면은 해수면 아래 40m에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 Ghyben-Herzberg(가이벤-헤르츠베르크) 법칙이라고 한다(아래 그림). 이 원리를 다소 어렵게 생각할지 모르나 해안가 지하수의 염수화와 관련해 자주 회자되고 있는 법칙이니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Ghyben-Herzberg(가이벤-헤르츠베르크) 법칙

Ghyben-Herzberg(가이벤-헤르츠베르크) 법칙 이 법칙은 담수와 해수의 경계면이 지하수 해발고도의 40배가 된다는 이론으로 해안가 지하수의 염수화 문제와 관련해 흔히 사용되고 있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지하수의 해발고도가 1m일 경우 지하수와 해수의 경계면은 지하 40m가 된다(인용:).

그렇다면 제주 용천수의 나이는 대체 얼마나 될까? 땅속으로 언제 들어간 물이 지금 다시 나오고 있는 것일까? 지표수와 달리 지하수는 당연 나이를 갖고 있다. 물순환이 더딜수록 지하수 나이는 많아지며 물순환이 빠를수록 지하수 나이는 젊어지게 된다. 2003년 ‘제주도 수문지질 및 지하수자원 종합조사’에 따르면 제주의 용천수 나이는 1살부터 25살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이는 작년에 내린 빗물이 솟아나오는 용천도 있는 반면, 25년 전에 내린 빗물이 용출되고 있는 용천도 있다는 뜻이다. 용천수 나이는 해안가로 내려갈수록 많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만일 우리 눈앞에 10년의 나이를 갖는 용천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용출되는 물은 2004년에 내린 빗물이란 얘기가 된다. 그런데 2005년에 이 용천수 상부의 지하수 함양 유역에 축산 폐수, 화학 비료, 쓰레기 등의 오염원이 발생했다고 가정한다면 내년 2015년부터 이 용천수 수질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제주도 빗물을 다량 침투시키고 있는 제주 중간산 지역의 곶자왈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 엄격히 보존돼야 한다. 곶자왈 보존 여부는 제주의 영속성을 결정짓는 기본 잣대인 것이다.

제주로 가거든 용천을 두 곳 정도 방문해 볼 일이다. 제주시의 어승생수원지, 용연, 하물, 서창물, 서귀포시의 논짓물, 웃소먹는물, 자구리물, 여이물 등 어떤 곳이든 좋다. 용천수 수온을 느끼며 위에서 언급된 용천수의 물순환과 물수지 시스템을 되새겨 보자. 그래서 용천으로 인해 제주도가 ‘사다도(四多島)’라 불릴 만한 가치가 있는 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각 용천에 얽혀 있는 마을 이야기는 지리여행의 재미를 더해주는 고급 양념이 될 것이다.

추천 여행지

제주도의 걷기 좋은 길들을 선정하여 개발한 도보여행 코스를 올레길이라고 한다. 올레길 곳곳에서도 좋은 용천수를 만날 수 있다.

올레길 18코스에 위치한 화북포구는 옛 제주 해상 교통의 관문으로 해신사, 화북진성, 별도연대와 같은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화북포구에서는 큰짓물 용천수를 만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생명수라 불리며 중요한 사람이 마셨던 물이라고 한다. 평균 수온이 섭씨 17~18도로 여름에는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삼별초의 항쟁 역사가 남아 있는 환해장성을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돌을 이용해 만든 성벽이다. 올레길 18코스의 화북포구는 용천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유적지가 함께 있어 시원하게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올레길 8코스의 논짓물 용천수, 9코스의 화순해변 용천수, 10코스의 수월봉 용천수. 10코스의 신촌리 큰물 등이 있다. 올 여름 제주도 올레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용천수를 찾아 무더위를 식히길 바란다.

참고

  • 『제주도 수문지질 및 지하수자원 종합조사(III)』, p. 425, 제주도, 2003.

  • 박종관 - 건국대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

사진

  • 박종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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