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갑오년 기념, 말의 진화 이야기

2014 갑오년 기념, 말의 진화 이야기

주제 생명과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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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갑오년(甲午年)이 밝았다. 올해는 ‘말의 해’다. 화석이 많이 남아 있는 파충류와 포유류 중에 말 무리만큼 그 진화과정이 잘 알려진 동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약 5,500만 년 전 하이라코테리움이라는 고양이만한 동물이 살았는데 오늘날 말과 맥, 코뿔소의 공동조상이라고 한다. 그 뒤 여러 생물종이 나타나면서 점차 오늘날의 말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계열은 멸종해 명맥이 끊겼다. 그 결과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있는 말류는 에쿠스라는 단일 속(屬)으로 말과 얼룩말, 당나귀 등 8종이 있다. 몇몇 연구자들이 여러 증거를 토대로 오늘날 에쿠스속 종들의 공동조상이 대략 400만 년까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던 중 2013년 7월 4일자 과학저널 ‘네이처’에 70만 년 전 북미대륙을 질주했을 말의 냉동 사체(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게놈을 해독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덴마크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2003년 캐나다 유콘준주 시슬강 지역 영구동토에서 발견한 말의 뼈를 분석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4만 3,000년 전 말과 현생 길들여진 말(5품종), 프르제발스키 말, 당나귀의 게놈도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의 공동 조상이 400만~45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직 화석 증거는 없지만 현재까지 추정해 온 연대와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연구진이 이들 사이의 유전적 거리를 비교한 결과, 먼저 당나귀와 나머지의 공동조상이 분리됐고 그 뒤에 70만 년 전 종과 나머지의 공동조상이 분리됐다. 그리고 4만 3,000년 전 종과 나머지의 공동조상이 분리됐다. 길들여진 말과 프르제발스키 말은 3만 8,000년~7만 2.000년 전 갈라진 것으로 나왔다. 발굴된 뼈만으로는 70만 년 전 종이나 4만 3,000년 전 종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게놈 데이터만 보면 당나귀보다는 말(품종개량 과정에서 많이 변형됐을 가축화된 말 보다는 프르제발스키 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프르제발스키 말이 어떤 중요성을 띠기에 이번 연구에서 비교군의 하나로 포함됐을까.

■ 프르제발스키 말의 발견
1839년 러시아 스몰렌스크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Nikolay Przhevalsky)는 역마살을 누르지 못하고 바람처럼 살다가 티푸스에 걸려 49세에 객사한 사람이다. 25세에 군사학교의 지리교사로 부임한 프르제발스키는 28세 때인 1867년 러시아지리학회에 시베리아를 조사하겠다는 제안서를 내 지원을 얻는데 성공한다. 1869년까지 실컷 돌아다니다 온 그는 ‘우수리 지역 여행’이라는 탐사일지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 뒤 네 차례에 걸쳐 한 번에 2~3년 걸리는 중앙아시아 탐사여행을 하면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여러 동식물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몽골에서 발견한 야생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생말은 사실 진짜 야생말이 아니다. 사람이 길들여 가축으로 만든 말이 탈출해 자연으로 되돌아가 적응한 것이다. 프르제발스키가 몽골에서 야생말을 목격하기 전까지 서구인들은 지구상에서 야생말이 멸종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15세기 독일의 탐험가 요한 실트베르거가 몽골에서 특이하게 생긴 야생말을 봤다는 기록을 본 프르제발스키는 몽골 초원의 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1879년, 그 야생말을 발견한다. 1881년 생물학자 폴리아코프는 이 말의 학명을 발견자 프리제발스키를 기려 ‘에쿠스 프르제발스키(Equus przewalskii)’라고 명명했다. 그 뒤 이 말은 ‘프르제발스키 말’ 또는 ‘몽고야생말’로 불린다.

프르제발스키 말은 (가축화된) 전형적인 말에 비해 다리가 짧아 땅딸막하다는 인상을 준다. 얼굴도 길쭉하면서도 둥글둥글한 게 보통 말과는 확실히 다른 생김새다. 키(어깨 높이)는 130cm 정도이고 몸무게는 300kg 내외로 제주마보다 약간 더 큰 조랑말로, 야생에서는 수마리가 가족으로 무리지어 생활한다.

발견 당시에도 이미 얼마 되지 않던 개체수는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1969년 몽골에서 마지막 야생 프르제발스키 말이 죽었다. 한편 독일 뮌헨과 체코 프라하의 동물원에 프르제발스키 말 수십 마리가 있었는데, 1950년대에는 12마리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다행히 1977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프르제발스키 말 보존 · 보호재단’이 설립됐고, 1992년 16마리를 몽골의 초원으로 되돌려 보낸 것을 시작으로 야생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몽골과 중국 여러 곳에서 야생으로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살고 있고 각국의 동물원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르제발스키는 여전히 전 세계에 1,000여 마리만 있는 희귀종이다.

사실 프르제발스키 말은 희귀‘종’은 아니다. 오늘날은 가축화된 말과 같은 종인 ‘에쿠스 페루스(Equus ferus)’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즉 프르제발스키 말은 에쿠스 페루스의 한 아종으로 아종명까지 포함된 학명이 ‘에쿠스 페루스 프르제발스키(Equus ferus przewalskii)’이고 가축화된 말은 ‘에쿠스 페루스 카발루스(Equus ferus caballus)’다. 겉모습이 꽤 차이가 남에도 한 종으로 묶은 건 프르제발스키 말과 (가축화된) 말 사이에 생식력이 있는 새끼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당나귀와 말 사이에서는 생식력이 없는 새끼(노새나 버새)가 태어나 둘이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프르제발스키 말은 종다양성의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말이 가축화되면서 게놈상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파악하는데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다행히 게놈분석 결과 프르제발스키 말의 게놈에 가축화된 말의 게놈이 유입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과거 몽골에서도 가축화된 말과 피가 섞이지 않았고 사람에게 잡혀 동물원으로 팔려와 수 세대가 지나 다시 몽골 초원으로 간 여정에서도 혈통을 유지했다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보니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도 프르제발스키 말이 몇 마리 있는 듯하다. ‘말의 해’를 맞아 언제 한 번 보러가야겠다.

  •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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