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의 세계 ① 적군도 친구도 예외 없는 도청

도청의 세계 ① 적군도 친구도 예외 없는 도청

주제 통신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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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00년 즈음 중국 춘추시대에 살았던 전략가 손무는 총 13편에 달하는 ‘손자병법’을 저술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갖가지 비결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구절은 ‘지피지기 백전불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객관적인 기준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면 된다. 그러나 상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분석과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실들 즉 ‘정보’가 있어야 한다. 적군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어느 시대에나 세작, 첩자, 간첩이라 불리는 요원들이 활동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염탐했다.

‘도둑처럼 몰래 훔쳐 듣는다’는 뜻을 가진 ‘도청’ 작업도 그 중 하나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대화를 엿듣거나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채 정보를 알아냈지만 통신수단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는 전화, 무전기, 팩스뿐만 아니라 이메일과 인터넷 검색 내용까지 도청을 실시한다. 컴퓨터를 해킹하거나 스마트폰에 악성코드를 심어서 카메라와 마이크 기능을 작동시키고 중요 정보를 빼내기도 한다.

적군의 중요 정보를 알아내는 도청은 전쟁에서 승리해 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편이다. 그런데 적이 아닌 아군을 염탐한다면 어떨까? 자신을 공격할 리 없는 친구나 오랜 신뢰 관계를 유지시켜온 동료를 몰래 도청하고 뒤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면?

■ 美 국가안보국, 세계를 대상으로 불법 도청을 실시하다
어느 조직이든 ‘내사’라는 제도를 운용한다. 부패를 방지하고 규율을 세우기 위해서 별도로 조사를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에서 상대의 동의 없이 사생활을 엿보거나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일이 발생한다면 진정한 아군이라 부를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국가의 헌법은 정부가 일반인의 사생활을 염탐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국가 간의 동맹과 국민들의 신의를 저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동맹국 고위층을 도청하고 일반인을 감시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최초 보도하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연이어 특종을 터뜨리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평화의 파수꾼을 자처하던 미국이 그동안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불법 도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1년 발생한 9.11테러 이후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기관의 정보 검색 기능을 강화시켜왔다. 2008년 개정된 해외정보감시법(FISA)은 제215조에서 정부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정보 수집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미국 시민이나 미국 내 거주자는 감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원칙이다. 최상위 법률인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 국가안보국은 일반 시민들의 통화내역을 마음대로 들여다보았고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스카이프 등 대형 인터넷 기업의 시스템에도 직접 접속해 각국 사람들의 활동 내역을 수집했다. 뿐만 아니라 통화기록, 이메일, 메신저, 화상채팅, 사진, 전송파일, SNS 게시물 등 온갖 정보를 수집하는 ‘프리즘(PRISM)’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게 된 것은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의 폭로 덕분이다.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의 컴퓨터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외부업체에서 파견된 직원이었다. 내부 서버에 접속하면서 불법 도청 사실을 알게 됐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결국 고발을 결심한 것이다.

처음에는 극구 부인하던 미국도 점점 더 많은 내용이 잇달아 폭로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민뿐만 아니라 35개국의 고위층도 도청의 대상이 됐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영국, 호주, 독일, 우리나라 등 우방국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세계 곳곳에서 항의가 밀려들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받은 적법한 프로그램”이라며 사실상 ‘프리즘’의 존재를 시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친분을 쌓아온 미국과 우방국들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도청 자체보다는 쓸모 있는 정보 골라내는 것이 기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려면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을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목소리나 몸짓 등의 매개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고 듣게 돼 메시지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정보의 유출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전화기나 편지처럼 기기와 도구를 이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면 중간에 누군가 가로챌 위험이 높아진다. 전기와 전자 방식을 이용한 통신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반면에 도청의 위험성도 크다. 미국은 1862년부터 전보와 편지 등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을 엿보거나 엿듣는 행위를 법률로 금지했다. 그러나 1876년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 발명특허를 등록한지 20년도 되지 않아 곳곳에서 전화 도청이 발생했다.

1928년 미국 대법원이 경찰의 전화 도청을 합법적으로 승인한 이후, 사회 질서를 위해 일반인에 대한 전화 도청을 실시해야 한다는 움직임과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해왔다. 지금도 각국에서는 정부기관의 도청 업무를 인정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도청의 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정보를 주고받는 채널이 다양해지고 인터넷 페이지나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감시해야 할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제는 도청 자체보다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쓸모 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기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을 곤경에 빠뜨린 ‘프리즘’도 온갖 채널과 매체를 통해 매일 오가는 수천 억 건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갖췄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지금도 각국 정보기관의 서버로 흘러들어가 분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군과 친구까지도 불법으로 도청하는 세상이다. 민감한 정보와 개인적인 사항은 새가 듣고 쥐가 듣지 않도록 스스로 잘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 임동욱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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