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의 어린 아이, 휴대전화

마흔살의 어린 아이, 휴대전화

주제 통신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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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3년 4월 3일, 미국 통신회사 AT&T가 설립한 벨연구소에 전화벨이 울렸다. 조엘 엥겔(Joel Engel) 소장이 직접 받았다.

“여보세요, 엥겔 소장입니다.”
“조엘? 나 마틴일세. 지금 이 통화 말이지. 새로 개발한 휴대전화로 거는 거야.”
“·····”
“여보세요, 조엘?”

충격을 받은 엥겔 소장은 멍하니 듣고만 있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쟁업체 모토로라가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를 먼저 개발했기 때문이다. 벨연구소는 각종 특허를 휩쓸며 통신관련 기술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에 설치된 카폰 생산에 만족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엄청난 타이틀을 빼앗긴 것이다.

■ 40년 전 모토로라가 발명한 최초의 휴대전화
들고 다니는 전화기를 발명해 인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사람은 마틴 쿠퍼(Martin Cooper) 연구원이었다. 그가 엥겔 소장에게 전화를 걸 때 썼던 휴대전화는 다이나택(DynaTAC)이었다. 지금도 휴대전화가 크고 무거우면 “벽돌을 들고 다니냐”는 핀잔을 듣지만 다이나택이야말로 진정한 벽돌 전화기였다. 한 뼘이 넘는 길이에 무게도 1kg을 넘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휴대전화를 탄생시킨 마틴 쿠퍼

최초의 휴대전화를 탄생시킨 마틴 쿠퍼

연구를 거듭해 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크기를 줄이기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1983년 3월 6일 마침내 ‘다이나택 8000X’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시작됐고 본격적인 휴대전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진정한 휴대전화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가격은 3,995달러로 지금 우리 돈으로 약 1,000만 원에 달했지만 실제 통화는 10시간 충전에 겨우 35분 정도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4년이 흐른 1987년에 휴대전화 생산에 뛰어들었다. 일본 도시바에서 기술을 도입한 삼성전자가 1989년 5월 ‘SH-100’이라는 모델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가격은 당시 300만 원이었던 모토로라 휴대전화의 3분의 2에 불과한 180만 원으로 책정됐지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불량률이 11.8%에 달해 구매자들의 불만이 속출한 것이다.

불량품으로 회수된 15만 대의 휴대전화를 구미공장 운동장에 모아 놓고 불을 지르고 해머로 내리친 후에야 품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제는 노키아와 모토로라를 제치고 애플과 더불어 휴대전화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다.

■ 디지털 통신 서비스 거쳐 LTE의 시대로
디지털 통신망이 탄생할 때까지 전 세계는 아날로그 장비를 이용해 휴대전화 신호를 주고받았다. 품질이 좋을 리 없었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미국 통신회사 퀄컴이 발명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을 도입해 상용화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6년 1월 마침내 2세대(2G) 서비스를 개시해 세계 최초로 디지털 통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2006년에는 3세대(3G) 서비스라 불리는 ‘광대역 코드분할 다중접속(WCDMA)’ 방식이 탄생했다. 음성과 문자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까지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3세대는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용하는 통신망이기도 하다. 지역별로 기술은 약간씩 다르지만 로밍 서비스로 연결하면 언제 어디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은 그보다 7배 이상 빠른 4세대(4G) ‘롱텀 에볼루션(LTE)’ 서비스가 상용화됐다. 지난 2013년 4월 10일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입자만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동전화 가입자의 37%, 스마트폰 사용자의 58%에 해당되는 숫자다. 기지국도 곳곳에 설치돼 이제는 대한민국의 동쪽 끝 독도에서도 LTE로 접속 가능하다.

통신기술이 발달할수록 휴대전화의 성능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디지털 통신망을 이용하는 휴대전화에 이어 컬러 화면을 탑재한 기기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대신할 정도로 똑똑한 ‘스마트폰’이 등장해 또 한 번의 변혁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반 휴대전화에 한두 가지 특이한 기능을 덧붙인 것을 ‘피처폰’이라 한다. 특징(feature)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스마트폰은 원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이든 설치해 사용하는 것이 장점이다.

PC 수준의 3D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어학 공부를 위해 전자사전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메일과 채팅도 가능하고 GPS 기능을 이용해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대신할 수도 있다. 바깥에서도 회사의 업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서버에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감상하기도 한다. 이처럼 애플리케이션(앱)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니 세상에서 유일한 휴대전화를 가지는 셈이다.

■ 지나친 발전이 가져온 중독의 위험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하루 24시간 내내 들고 다니다보니 게임 중독, 채팅 중독, 인터넷 중독 등 부작용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하는 기능을 마음껏 탑재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오히려 지나친 몰입을 유발해 도저히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짤막한 채팅을 나누는 메신저 서비스에 빠지는 바람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화면을 들여다보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인맥을 넓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노출시키는 관계중독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초 · 중 · 고등학생 3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는 고등학생의 10%, 중학생의 7%, 초등학생의 1%가 중독과 금단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에 중독을 겪으면 사회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성인이 돼서도 후유증을 겪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2013년, 휴대전화가 탄생 40주년을 맞이했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이라 불리는 나이지만 지칠 줄 모르는 변신 덕분에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관계를 이어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든든한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어떻게 쓰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 임동욱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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