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누스

라티누스

[ Latinus ]

요약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라티움의 왕이다.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의 유민을 이끌고 라티움에 도착했을 때 정착할 땅을 내주고 자신의 딸 라비니아를 그와 결혼시켰다. 이에 아이네이아스는 라티움 원주민과 트로이 유민을 결합시킨 새 나라 라비니움을 건설하였다.
회의를 집전하는 라티누스

회의를 집전하는 라티누스

외국어 표기 Latinus(라틴어)
구분 왕 > 라티움
관련 사건, 인물 아이네이아스의 이탈리아 정착, 로마 건국
가족관계 아마타의 남편, 라비니아의 아버지

라티누스 인물관계도

라티누스 인물관계도 축소판

로마 신화에서 라티누스는 목신 파우누스(그리스 신화의 판)와 숲의 님페 마리카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사투르누스(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의 직계 자손이다. 라티누스는 아마타와 결혼하여 외동딸 라비니아를 낳았고, 라비니아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결혼하여 로마 왕가의 시조가 되는 아들 실비우스를 낳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라티누스를 오디세우스 혹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여긴다.

신화 이야기

혈통

라티누스의 가계에 관해서는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의 내용이 각각 다르다. 그리스 신화에서 라티누스는 오디세우스키르케, 혹은 텔레마코스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이야기된다. 후자의 경우 라티누스는 오디세우스의 손자가 된다. 반면에 로마 신화에서 라티누스는 목신(牧神) 파우누스(판)와 민투르나이 숲의 님페 마리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티탄 신족의 우두머리 사투르누스(크로노스)의 직계 자손(증손자)이다.

라티누스의 가계는 헤라클레스의 신화와 결합하여 또 다른 이야기로 변형된다. 이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12과업 중 하나로 게리온의 소떼를 빼앗아 돌아오는 길에 트라키아 북부에 산다는 전설적인 부족 히페르보레이오이 족의 처녀 팔라콘을 인질로 잡았는데, 이탈리아를 지날 때 그곳 원주민을 다스리던 파우누스에게 아내로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우누스의 아내가 되었을 때 팔라콘은 이미 헤라클레스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그 아이가 바로 라티누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이탈리아에 들렀을 때 파우누스의 아내 혹은 딸과 관계를 가져 라티누스를 낳은 것이라고도 한다.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일행

라티누스가 파우누스에 이어 이탈리아 중부 해안의 라티움 지방을 다스리고 있을 때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의 유민들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했다. 라티누스는 아이네이아스 일행을 환대하고 정착할 땅도 자진해서 내주었다(→‘아이네이아스’ 참조). 라티누스에게는 라비니아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신탁은 그에게 딸을 이방인에 내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였으므로 그는 아이네이아스를 딸의 남편으로 삼으려고 했다. 사실 라비니아는 이미 이웃부족인 루툴리 족의 왕이자 아마타 왕비의 조카인 투르누스에게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라티누스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라티누스의 궁정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라티누스의 궁정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페르디난트 볼, 1661~1663년, 개인 소장

라티움의 신성한 사슴을 죽인 아스카니오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얼마 뒤 뜻밖의 사건으로 라티움 원주민과 트로이 유민 사이에 불화가 발생했다.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사냥을 하다 실수로 신성한 암사슴을 죽이자, 화가 난 원주민 청년들과 아스카니오스 일행 사이에 싸움의 벌어졌던 것이다. 처음부터 라비니아를 아이네이아스에게 주는 것이 못마땅했던 라티누스의 아내 아마타는 투르누스와 함께 라티누스를 부추겼고 결국 원주민들과 트로이 인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아이네이아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투르누스는 아이네이아스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아마타는 투르누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오보였고 그때 투르누스는 아직 살아있었다고 한다.

라비니움의 건설과 라티누스의 죽음

전쟁을 바라지 않았던 라티누스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채 아이네이아스와 결투를 벌이려는 투르누스를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쟁 중에도 그는 아이네이아스 진영과 협상을 벌여 죽은 병사들을 땅에 묻을 수 있게 하였고, 투르누스가 죽은 뒤에는 트로이 인들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전쟁이 끝난 뒤 라티누스는 딸 라비니아를 아이네이아스와 결혼시키고 라티움의 왕위도 그에게 물려주었다. 이에 아이네이아스는 라티움 원주민과 트로이 유민을 결합시킨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이를 라비니아의 이름을 따서 라비니움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이 전쟁에서 라티누스는 아이네이아스와 손을 잡고 투르누스를 상대로 싸웠으며, 전쟁의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은 라티누스가 전사하지 않고 전쟁 중에 사라져 ‘유피테르 라티알리스’라는 이름으로 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로마의 전신인 라티움과 이 지역의 언어를 이르는 라틴어라는 명칭은 모두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라티누스 인물관계도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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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누스 인물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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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신화에서 라티누스는 목신 파우누스(그리스 신화의 판)와 숲의 님페 마리카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사투르누스(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의 직계 자손이다. 라티누스는 아마타와 결혼하여 외동딸 라비니아를 낳았고, 라비니아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결혼하여 로마 왕가의 시조가 되는 아들 실비우스를 낳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라티누스를 오디세우스 혹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여긴다.

참고자료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 리비우스, 『로마건국사』
  • M. 그랜트, J. 헤이즐, 『』, 범우사
  • 피에르 그리말, 『』, 열린책들
  • W. H. Roscher, 『Ausführliches Lexikon der griechischen und römischen Mytholo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