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준

문학준

[ 文學準 ]

요약 바이올린 연주가·교육자. 국립교향악단 악장(樂長). 전남 영암(靈岩) 출생. 1929년 일제강점기 연전(延專) 음악부원의 한 사람.
출생 - 사망 1914년 ~ 1988년
문학준

1929년에 부임한 현제명(玄濟明)의 지도 아래 김생려(金生麗)·김성태(金聖泰)·황재경(黃材景)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3년 연희전문 문과에서 공부했다. 홍난파(洪蘭坡)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937년부터 동경음악학교(東京音樂學校)에서 공부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사 주최 전조선음악경연대회에서 1등으로 뽑힌 그의 사진이 『朝光』(1937) 18호에 소개됐고, 그의 평론 "제2회 전조선남녀음악콩쿨평"은 『朝光』(1938) 38호에 발표됐으며, 그의 글 "음악고"(音樂苦)는 『朝光』(1941) 75호에 발표되었다.

1945년 귀국해 서울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 악장을 거쳤고,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따라 경성음악전문학교(京城音樂專門學校)가 서울대학교로 편입되어 서울대 예술대학 음악부로 개편됐을 때 교수진의 한 사람이었다. 1946년 9월 16일 우익 음악가들로 결성된 고려교향협회(高麗交響協會)의 회원이었다.

1947년 안용구·최영우·김준덕과 함께 문학준4중주단을 창단했다. 1948년부터 연세대(延世大) 음악교원을 지냈으며, 1949년 문학준이 『민성』(1949) 8월에 발표한 "시련기의 민족음악"은 민족음악의 수립과 관련된 대표적인 글의 하나이다. 1950년 4월 10일 서울교향악단의 협주로 독주회를 열렸다.

6·25사변 때 월북하여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조선인민군협주단 관현악단 악장 겸 지휘자, 그 후 국립교향악단 악장으로 활약했고, 공훈배우·부교수가 되었다. 바이올린 독주곡 "모란봉"·"능수버들"·"쇳물은 흐른다" 등 수 편을 창작했고, 1961년 공훈배우가 됐고, 국가훈장 1급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