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진빠오문화

바이진빠오문화

[ 白金寶文化 ]

중국 헤이롱지앙성(黑龍江省) 서남부와 지린성(吉林省) 북부에 걸쳐 있는 소웅너언평원(松嫩平原)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문화이다. 북쪽으로는 너허(訥河), 남쪽으로는 지린성 농안(農安), 서쪽으로는 씨라무룬허(西拉木倫河) 일대까지 분포하며, 중심지역은 너언지앙(嫩江) 하류지역과 하얼빈(哈爾濱), 빠이앤(巴彦), 삔씨앤(賓縣) 등 소웅후아지앙(松花江) 유역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짜오위앤(肇源) 바이진빠오(白金寶), 우어롱(臥龍), 따안(大安) 한쑤우(漢書), 도옹싸안토우(東山頭), 두얼버터구안띠(杜爾伯特官地) 등이 있다.

집자리〔住居址〕는 장방형의 반지하식이 주류를 이루며, 면적은 대략 30㎡ 내외이다. 집자리의 중앙부에는 비교적 대형의 중심 기둥구멍〔柱穴〕이 자리잡고 있으며, 벽면을 따라 소형의 기둥구멍이 발견된다. 출입구(出入口)는 동남쪽을 향한다. 일반적으로 화덕자리〔爐址〕는 집자리의 앞쪽에 있고, 뒤쪽에는 저장구덩이〔貯藏孔〕가 마련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적인 바이진빠오 유적은 1974년, 1980년, 1986년 등 3차레에 걸쳐 조사가 되었는데, 약 1,700㎡의 면적 내에 모두 54기의 집자리, 356기의 구덩〔竪穴〕, 도랑〔溝〕 등이 발견되었으며, 복원이 가능한 약 400여점의 도기(陶器)를 비롯하여 석기(石器), 뼈연장〔骨器〕, 청동기(靑銅器)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아직 완전히 발굴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으나, 3차 발굴조사 시 집자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도랑과 대형의 저장구덩이〔貯藏穴〕 등 방어시설과 저장시설이 확인되어 이 유적은 대형의 취락유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의 밀집도와 구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전체 유적 내에는 약 250∼300여 기의 집자리가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도기는 사질(沙質)과 니질(泥質)의 바탕흙〔胎土〕을 이용하였고 대부분 점토띠를 판축하여 손으로 만들었다. 사질도는 회갈색을 띠는 반면에 니질도는 주로 황갈색이며 홍도가 소량 발견된다. 도기의 종류로는 직복강력(直腹腔糠), 절복발(折腹鉢), 수복대평저관(垂腹大平底罐) 등이 있다.

문양은 노끈무늬〔繩文〕, 절치문(節齒文), 방격문(方格文), 현문(弦文), 기하비점문(幾何冽點文), 지인문(指印文), 부가퇴문(附加堆文) 등으로 비교적 다양하다. 노끈무늬와 부가퇴문을 결합한 문양은 주로 세가랑이솥〔糠〕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문양은 주로 바리〔鉢〕, 큰접시〔盆〕, 두레박〔罐〕 등 소형의 도기에 새겨져 있다. 도기의 문양 중 가장 특색있는 것은 기하비점문이다. 기하비점문은 비점문을 연속적으로 빽빽하게 새겨져 양, 개구리, 낙타, 사슴 등의 동물문양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문양의 변화가 매우 다양하다.

청동기는 칼〔刀〕, 화살촉〔鏃〕, 단추〔泡〕, 치레걸이〔裝身具〕 등 소형이 주류를 이루며, 유적 내에서 흙이나 돌로 만든 거푸집〔鎔范〕이 발견된 바 있어서 당시 청동기를 직접 제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생산도구는 뼈, 뿔, 조개를 정교하게 가공하여 만든 화살촉, 창(槍) 등이 대다수를 점하며, 석기는 비교적 적다. 바이진빠오문화의 유적 내에는 동물뼈, 물고기뼈, 조개류가 다량으로 퇴적되어 있는 구덩이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서 어로와 수렵에 기반을 둔 당시인들의 경제생활을 파악할 수 있다.

소웅너언평원 일대의 청동기문화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시작되었으나, 당시의 조사는 지표조사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특히 짜오위앤 바이진빠오와 따안 한쑤우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소웅너언평원 일대의 청동기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양상을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진빠오문화의 절대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대략 B.C. 1100∼800경으로 파악되어, 소웅너언평원 일대에는 씨쪼우시대와 춘치우시대에 걸쳐 바이진빠오문화가 존재하였고, 짜안구어시대에 들어서면서 한쑤우 2기문화(漢書 二期文化)가 등장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바이진빠오유적을 제외하고는 절대연대가 측정된 유적이 아직 없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신원)

참고문헌

  • 黑龍江肇源白金寶遺址第一次發掘(黑龍江文物考古工作隊, 考古期4, 19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