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동 109호분

황남동 109호분

[ 慶州 皇南洞 109號墳 ]

지역 경주

현존하는 고신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으로 주목받아 온 고분이다. 1934년 일본인 齋藤忠에 의하여 발굴되었는데, 발굴당시에 남아 있던 봉분은 직경 13m, 높이 1.8m의 중형급 고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봉분의 내부에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4개의 덧널(木槨)이 발굴되었다. 이 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놓인 제1곽과 동서로 놓인 제2곽 및 제3곽은 각각 피장자가 안치된 으뜸덧널(主槨)이고, 제4곽은 제3곽에 딸려 있는 딸린덧널(副槨)이다. 이들은 각각 딸린덧널이 있는 주부곽식(主副槨式)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되는데, 그 순서는 제3곽과 그 딸린덧널인 제4곽이 먼저 축조되고, 그 뒤에 제1곽과 딸린덧널, 그리고 제2곽과 딸린덧널이 각각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축조된 제3곽의 덧널 규모는 동~서 길이 3.5m, 폭 1.2m이며, 제3곽의 서쪽에 위치한 제4곽은 동~서 길이 3.5m, 폭 2.1m인데 제3곽과는 폭 40㎝의 토벽을 사이에 두고 설치되었다. 덧널의 바닥면은 길이 4.4m, 폭 2.55m의 무덤구덩이 바닥에 자갈이 섞인 점토를 다진 뒤에 그 위에 다시 자갈을 깔아서 만들었는데, 피장자의 두향(頭向)은 동침(東枕)이며 머리맡에는 부장품이 놓여 있었다. 제3·4곽의 바깥쪽으로는 둘레돌(護石)의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복원직경은 약 16m에 달한다. 출토유물로는 제3곽에서 금제가는고리귀고리와 관옥류(管玉類)의 장신구류가 나왔고, 제4곽에서 금고리(金環), 곡옥 등의 수식류(垂飾類)와 철제안장·철제발걸이 등의 마구류, 그리고 철제큰칼 및 철제이기류와 토기 등 많은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한편 제1곽의 규모는 남~북 길이 3.7m, 폭 1.7m에 덧널 벽이 70㎝ 정도 남아 있었고, 비록 유물층은 교란되었지만 남쪽에 부장품수장부가 있었으며, 딸린덧널은 길이와 폭 모두 1.5m로 방형(方形)이었다. 덧널 바닥에는 자갈을 깔았으며, 딸린덧널은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출토된 장신구의 배치로 보아서 피장자의 두향은 제2곽이나 제3곽과는 달리 남침(南枕)인 점이 주목된다. 출토유물로는 으뜸덧널에서 백화수피제관모·금동제귀고리 등의 장신구와 철제이기류, 토기 등이 나왔고, 딸린덧널에서는 철제발걸이·말띠드리개(杏葉) 등의 마구류와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제2곽의 으뜸덧널은 규모가 동~서 길이 4.1m, 폭 1.5m 잔존 높이는 0.6m 정도였으며, 딸린덧널은 길이 0.9m, 폭 1.5m이며 바닥이 으뜸덧널의 그것보다 22㎝ 정도 높았다. 으뜸덧널에서는 쇠손칼(鐵刀子) 1점이 출토되었을 뿐 다른 유물은 없었고, 머리맡의 부장부에서는 쇠투겁창(鐵矛) 등의 철기와 토기가 나왔고, 딸린덧널에서는 토기류들만 출토되었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크게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제3곽과 4곽의 경우 4세기 초에서 5세기 초까지 다양하지만 적석목곽분 자체의 연대로 보아 4세기 중엽경이나 말엽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新羅古墳硏究(崔秉鉉, 一志社, 1992년)
  • 慶州皇南洞第109號墳의 構造再檢討(李熙濬, 三佛金元龍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1987년)
  • 慶州皇南里第109號墳·皇吾里第14號墳調査報告(齋藤忠, 昭和九年度古蹟調査報告 1, 193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