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실총

삼실총

[ 集安 三室塚 ]

삼실총 내부 구조

삼실총 내부 구조

中國 吉林省 集安市 禹山 남쪽 기슭의 太王鄕 禹山忖의 평원 한가운데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1904년에 처음 조사된 후 1935-36년도에도 조사되었고, 3개의 널방(玄室)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로 인하여 삼실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975년 중국인 연구자들이 집안시 일대의 통구(通溝) 고분군을 재조사할 때 제1실의 바닥에서 부장되었던 도기를 수습하였다. 이들은 네귀항아리(四耳陶壺), 귀잔(陶耳杯), 바리(鉢), 도제(陶製) 부뚜막 등인데 모두 녹갈유(綠褐釉)가 시유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 많지 않아 이들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실총 벽화(출행도)

삼실총 벽화(출행도)

거의 대등한 규모의 돌방 3개가 ‘ㄱ’자형으로 짧은 무덤길(墓道)을 통해 연결되고 제1실의 전면에 긴 널길(羨道)을 내어 전체적인 내부구조가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3개의 돌방 중에 제1실이 약간 큰 편인데 서벽 한가운데에 긴 널길을 내고 널길 입구는 돌을 쌓아 막고 널길과 널방의 사이에는 문비(門扉)를 설치하였다. 널방은 정방형(正方形)이고 낮은 수직벽 위에 활(穹窿式)천장부가 얹혀져 있다.

천장은 먼저 6단의 평행 고임돌내기 수법으로 쌓고 최정상부 2단은 말각조정(抹角藻井)으로 완성하였다. 제2실은 제1실에 비해 천장부도 약간 낮고 규모도 작다. 제2실 역시 정방형의 평면에 천장부는 평행 고임돌내기 4단과 말각조정 2단으로 활천장을 형성하였다. 제1실과 제2실 사이의 통로는 북벽에 붙여 만들었다. 제3실의 규모와 구조는 제2실과 동일하다. 제3실은 제2실의 서측에 붙어 있는데 서벽으로 치우친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세 널방은 모두 절석(切石)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벽면 전체에 백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다.

제1실의 4벽에는 묘주(墓主)의 현실생활을 묘사한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널방의 네 귀퉁이에는 먹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주칠(朱漆)로 채운 네 기둥이 묘사되어 있다. 기둥 상단에 두공(枓拱)을 묘사하고, 4벽 상단에는 적색과 황색의 장막을 그리고 술과 영락(瓔珞)으로 장식하였다. 제1실의 동벽에는 내부에 각각 7명의 인물이 앉아 있는 가옥 4채가 묘사된 가옥도(家屋圖)가 그려져 있다. 벽면 남쪽편으로부터 첫째와 둘째 집은 맞배지붕이고 보주형장식이나 치미가 묘사되어 있다. 각각의 내부에는 여인이 앉은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셋째와 넷째 집은 2층집인데, 세 번째에는 묘주로 보이는 인물이 앉아 있고, 네 번째 집에는 2명의 하인이 시중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1실의 남벽은 아래, 위로 양분하여 상단에는 묘주인공과 그의 처가 하인을 이끌고 외출하는 출행도(出行圖)를 그리고, 하단에는 수렵도(狩獵圖)를 그렸다.

출행도의 맨 앞쪽 인물은 길을 인도하는 종복이고 그 뒤에 황색 절풍(折風)을 쓴 주인공이 가고 있다. 주인공 뒤에는 황색 두건을 쓰고 녹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치마를 입은 처가 서 있고, 그 뒤로 남녀 시종이 뒤따르는 장면이 묘사되었는데, 모두 11명으로 구성된 출행도이다. 제1실의 북벽에는 유명한 공성도(攻城圖)가 그려져 있다. 2명의 장수가 성벽 앞에서 긴 창을 들고 격전을 하는 장면인데, 인물과 말이 모두 비늘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있다. 제1실의 서벽은 통로에 의해 양쪽으로 나뉘는데, 좌우 양쪽에 각각 수문장(守門將)이 그려져 있다. 제1실의 활천장이 시작되는 1단에는 괴운문(怪雲文)을 사방으로 연결한 도안이 장식되었다. 그 상단의 서쪽 면에는 1쌍의 주작(朱雀)이 묘사되고, 그 양편에 보리수(菩提樹)가 그려져 있다. 동쪽 벽에는 현무(玄武) 1쌍이 배치되어 있고, 천장에는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가 묘사되어 있다.

제1실과 제2실을 연결하는 통로 양쪽에는 황색 투구를 쓴 수문장이 묘사되어 있다. 제2실은 동·북·남벽 3면에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역사(力士)를 각각 그려 넣었다. 이 3명의 역사는 모두 동일한 자세로 앉아 대들보를 양손으로 떠받치고 있는데, 인물의 모습이나 의상이 각기 다르고 표정도 다르다. 서벽에는 1명의 무사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북쪽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팔찌를 찬 왼손으로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쥐어 허리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장창(長槍)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하체에도 비늘갑옷(札甲)을 걸치고 발에는 스파이크 신발과 같은 정이(釘履)를 신었다.

4벽의 바로 위 활천장의 첫째 단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각 벽면에 사신이 한 쌍씩 있다. 둘째 단에는 단정한 연화문(蓮花文)이 적절히 배열되어 있다. 천장부 상단 첫째 말각석(抹角石)에는 신선이 그려져 있다. 동북편 말각석에는 연화선인(蓮花仙人) 2명이 배치되고, 동남쪽 모서리에는 비파(琵琶)를 타는 선인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필치가 매우 유려하다. 서남쪽 귀퉁이에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신농씨(神農氏)가 묘사되어 있다. 활천장부의 천장석에는 일월도(日月圖), 북두칠성(北斗七星) 및 남두육성(南斗六星)을 묘사해 놓았다.

제3실의 벽화는 4벽에 대들보를 받치는 역사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제2실의 벽화 내용과 같다. 남·서·북벽의 역사는 자세가 제2실과 거의 같다. 동벽에 그려진 역사도가 매우 흥미로운데, 소매가 딱 붙는 긴 저고리를 입고 붉은 허리띠를 맨 채 잠방이를 걷어올린 붉은 바지를 입고 있다. 이 역사는 오른손으로 대들보를 받치고 왼손으로는 뱀을 휘감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제3실의 천장부 벽화 내용은 제2실과 대체로 비슷하다. 천장부 상단 말각석의 벽화는 제2실과 다르다. 제2실이 신선도를 주제로 하고 있는 반면에 제3실은 일각괴수(一角怪獸)와 천마도(天馬圖)를 그렸다.

고분의 구조로 볼 때 삼실총은 전·후 두 방(兩室)으로 정비된 전형적인 5세기대 고구려 벽화돌방무덤의 한 변형으로 보인다. 매우 짜임새 있는 내부구조와 돌방 축조의 세련된 기술을 볼 수 있다. 벽화의 내용도 앞 단계의 무용총(舞踊塚)이나 각저총(角抵塚)보다 훨씬 풍부한 편이다. 공성도, 역사도, 신선도, 신농씨상, 사신도 등은 이전 단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화법이나 필치도 세련되고 대상을 묘사하는 능력도 발전하였다. 벽화 내용뿐 아니라 출토된 도기의 연대로 보아 대체로 5세기 중엽 정도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