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제모조품

석제모조품

[ 石製模造品 ]

석제모조품

석제모조품

일본(日本)의 고분시대(古墳時代)에 발견되는 특유의 유물 중에 하나로 질이 무른 활석(滑石)과 같은 석재를 사용하여 무기, 농공구, 목제용구, 제반 일상용품(日常用品) 등의 각종 기물을 모방하여 만든 일종의 의례용물품(儀禮用物品)이다.

4세기 후반대 처음으로 제대로 제작된 모조품이 등장하는데 고분에서도 출토되지만 제사유적에서도 다량으로 출토된다. 4세기 후반대에는 대상을 충실히 모방하지만 5세기대를 지나면서 점차 제작기술이 조잡하게 되며 같은 유물을 다량 생산하게 된다. 5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고분의 분구 중에 매납되는 일이 많은데 일종의 무덤 앞에서 지낸 제사에 사용되었던 것이라 추측된다. 6세기가 되면 고분에서 발견되는 일은 거의 없어지지만 제사유적에서는 고분시대 말기까지도 발견된다.

석제모조품은 일종의 매장의례에 공헌되는 물품으로서 발생하였다고 생각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는 제사유적에서 제신(諸神)에게 바쳐지는 일종의 공헌물의 성격이 짙어진다. 이에 따라 처음 매장의례에 쓰여진 물품은 크고 실물을 정교하게 모방한 것이지만 점차 소형화·형식화되고 제작도 조잡해지게 된다.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엽에 걸쳐 만들어진 검(劍)·화살촉·갑옷·방패 등의 무기류, 도끼·끌·괭이·삽·가래 등의 각종 농기구·공구류, 굽은옥이나 청동거울과 같은 장신구류, 그릇과 일상용품의 모방품은 잘 만들어졌고 매장시설 안에 부장되었다. 하지만 5세기 중엽과 후반의 물품들은 봉토 중에 매납되며 주로 옥류나 농기구류 등의 모조품이다. 이후 제사유적에서만 출토되는 모조품들은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보다 형식화된 조제품인 것이다.

한국의 삼국시대에는 석제모조품의 생산이나 이와 관련된 의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최근 조사된 김해(金海) 대성동(大成洞) 고분군과 부안(扶安) 죽막동(竹幕洞) 제사유적에서 발견되어 크게 주목을 받는 유물이다. 대성동 유적에서는 13호 목곽묘에서 화살촉 형태의 벽옥제석제품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일본 기나이지방과 교섭하여 들어온 물품으로 해석되고 있다. 부안 죽막동 유적에서는 주로 5세기 후반 이후 6세기대 일본 제사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나왔는데 그중 유공원판(有孔圓板), 거울(鏡), 매미형석제품(蟬形品), 낫(鎌), 곡옥(曲玉), 손칼(刀子), 도끼(斧), 갑옷형석제품 등 제사유적의 석제품 세트가 출토되었다. 죽막동 제사유적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동일한 장소가 항해인(航海人)들의 제사터로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제사를 지낸 사람들도 백제, 신라, 가야, 왜인들까지 다양하다는 점에서 석제모조품의 출토 사실을 이해할만하다.

참고문헌

  • 扶安 竹幕洞 祭祀遺蹟(國立全州博物館, 1994년)
  • 金海大成洞古墳群-發掘調査の槪要と成果-(申敬澈, 東アジアの古代文化 68號, 1991년)
  • 祭祀(小出義治, 日本の考古學5 -古墳時代-, 河出書房, 19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