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과 프랑스

세계대전과 프랑스

프랑스 연합군 버펄로부대

프랑스 연합군 버펄로부대

20세기에 들어오자 프랑스에서는 독일을 적대시하는 과격한 민족주의(쇼비니즘)가 더욱 강해졌으며, 2차례에 걸친 모로코 사건(1905. 11)이 발생하였다. ‘애국자’ 대통령 푸앵카레(재직 1913∼1920)는 사회당을 포함한 거국일치 내각(擧國一致內閣)을 조직하였고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돌입하였다. 마른전투(장군 조프르 지휘, 1914년 9월), 베르전투(장군 페탱 지휘, 1916년 2∼6월) 등 초기에는 고전하며 독일군이 파리 근교까지 진격하였으나, 러시아군이 독일 동부로 파고들 때 프랑스군의 반격이 성공하면서 전선이 교착되었다.

1915년 독일 해군은 해전을 주도한 영국에 밀려 해상을 장악하지 못했지만 잠수함을 무기화하여 ‘무제한 잠수함전(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을 전개해 연합군을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고, 프랑스가 대독 연합군의 주축이 되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포슈(Foc) 연합국 총사령관이 독일과의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승전국이 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정적 손실이 있었다. 1930년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극우파 쿠데타 기도와(1934년), 좌파 연합의 인민 전선 정부의 수립(1936년), 1938년 공산당 탈퇴에 따른 붕괴 등 불안한 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나치 독일은 전쟁을 위한 재무장을 하였다. 

1939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폴란드에 침입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소련과 비밀협정을 맺은 독일이 1940년 5월, 중립국인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를 공격하여 방어선이 무너지고 6월 10일 이탈리아가 참전하자 폴 레노(Paul Raynaud) 총리가 사퇴하며 6월 22일 휴전을 선포한다.

프랑스 본토를 점령한 나치의 괴뢰정권인 비시정부가 원수 페텡(Pétain)의 지휘로 수립되었다. 런던으로 망명하였던 드골 장군이 라디오를 통해 ‘자유 프랑스’의 결성과 항전을 역설하며 국내에서도 레지스탕스 운동이 일어났다. 드골이 수립한 망명정부가 연합국의 협력으로 인해 승인되고 프랑스 식민지와 본토의 레지스탕스를 규합하면서 파리가 1944년 8월 해방되었다. 종전 후 프랑스는 전승국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실제로 제3공화국은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 비시정부의 수립으로 인해 1940년에 막을 내렸으나, 제3공화국의 헌법은 1945년 10월까지 존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