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정부

비시정부

[ Gouvernement de Vichy ]

요약 1940년 6월 나치스 독일과 정전협정을 맺은 뒤 오베르뉴의 온천도시 비시에 주재한 프랑스의 친(親)독일정부.

1940년 6월 13일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하자 레이노 총리가 사임하고, 친(親)독일파인 앙리 페탱(Henri Pétain) 원수가 조각하며 독일에게 항복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본국의 3분의 2를 독일 점령지구에 위임하고, 남은 남부 3분의 1을 비시 정부가 관할하였다. 국가주석에는 페탱이 취임하고 제3공화정 헌법을 폐지하여, 7월 신헌법을 발표하였다.

이 신헌법에 의해 국가주석은 행정·입법의 전권을 장악하고, 의회는 무기한 정지되었으며, 본래의 ‘자유·평등·우애’에 대신하여 ‘노동·가족·조국’이 새로운 슬로건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공산당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패전 뒤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노력하였다. 한편, 독일에 대한 협조를 지키면서 대자본가·은행가 등의 지지를 받고, 1942년 봄부터는 총리 피에르 라발(Pierre Laval) 통치하에서 일단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독일 점령군 감시하의 반(半)주권국가라는 외적 이상성(異常性)과, 의회기능이 전적으로 정지된 내적 이상성을 가진 특이한 정권이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여,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이어 프랑스가 해방되자 나치스 독일의 패배와 함께 붕괴하였다. 전후 페탱 이하 정부의 각료들은 반역죄로 문책되어 복역하였다.

참조항목

제3공화정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