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망소

클레망소

[ Georges Clemenceau ]

요약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언론인이며 의사. 상원의원과 총리 겸 내무장관을 지냈으며 육군장관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파리강화회의에 프랑스 전권대표로 참석하였고 베르사유조약을 강행하였다.
파리평화회의의 수뇌부

파리평화회의의 수뇌부

출생-사망 1841.9.28 ~ 1929.11.24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프랑스 우예롱앙파레드
주요저서 《승리의 명예와 비참》(1930)

우예롱앙파레드 출생. 처음에는 의사가 되었으나, 1871년 이 성립되기 직전 파리 제18구(區) 몽마르트르의 구장으로 선출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정계에 투신, 1871년 7월 급진공화당원으로 의회에 진출하였다. 1876년 18구 대표의원에 선출되었고, 그 후 1885년 3번째로 의회에 진출하였다. 1893년 파나마사건으로 한때 정계를 떠나 있었으나, 1894~1906년의 드레퓌스사건에서 드레퓌스의 옹호를 위해 힘쓴 결과, 개인의 명예회복과 함께 1903년 상원의원이 되었다.

1906년 3월 사리앙 내각의 내무장관, 이어서 총리 겸 내무장관이 되어 8시간 노동제 ·생활개선 ·민주제화 등을 공약하는 한편, 영국 ·러시아 양국과의 협조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1909년 총리직을 사임하고,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정부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상원의 육군위원장으로 활약, 1917년 불리한 전세에서도 총리 겸 육군장관에 취임하여 반역자나 패배주의자들을 즉결재판에 넘겨 총살하는 등 강경책으로써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 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프랑스 전권대표로 참석하였고, 미국 대통령 W.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립하는 보복주의를 취하였으며, 베르사유조약을 강행하였다. 1920년 1월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 후 총리직을 사임, 정계에서 은퇴하여 문필생활을 하면서 만년에는 고독한 가운데 생애를 마쳤다. 저서로 《데모스테네스 Démosthénes》(1926) 《내 사색의 황혼에 Au soir de la pensée》(1927) 《승리의 명예와 비참 Grandeurs et misères d’une victoire》(1930) 등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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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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