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공원

독립공원

[ 獨立公園 ]

요약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구(舊) 서울구치소 자리에 있는 공원이다.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에 의병투쟁, 3·1독립만세운동, 항일투쟁 등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선열들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이곳의 옥사는 1908년 일제가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하여 지은 근대식 감옥으로, 경성감옥이라는 명칭으로 문을 열었는데 항일투사들이 늘어나자 일제가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 감옥을 지어 1912년에 서대문감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후 1923년에는 서대문형무소로, 1946년에는 경성형무소로, 1950년에는 서울형무소로 바뀌었고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개칭되었다가 1967년 7월에 서울구치소로 바뀌는 등 여러 차례 그 명칭이 바뀌었다.

건립 당시에는 감방 480평, 청사 및 부속건물 80평으로, 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 전국에 있는 8개 감옥의 총수용인원이 300명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였다.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어 있던 이곳은 도시의 발달로 인하여 구치소 위치로는 적당하지 않아 1987년 11월 15일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갔다. 이때 서울시가 법무부로부터 이곳을 매입하여 1988년 조성공사를 시작하였고, 1992년 8월 15일 광복절 제47주년을 맞이하여 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공원 규모는 10만 9193.8㎡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역사전시관, 제9~13 옥사와 중앙사, 나병사, 추모비, 사형장, 지하옥사를 포함하고 있고 그외 시설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독립문, 독립관 등이다. 1908년에 지어진 옥사는 일제가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가두었던 곳이다. 서울구치소가 의왕으로 이전될 당시 옥사는 모두 15개 동이었으나 모두 없애고 보존가치가 있는 제9~13옥사와 중앙사, 나병사, 보안과청사, 사형장, 담장, 망루는 보존하고 있다.

그 중 순국선열들이 옥고를 치른 제10~12옥사와 사형장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으며 9사, 13사와 구여사(舊女舍) 및 지하감옥은 매몰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다. 구여사는 1920년 유관순이 고문 끝에 숨진 곳으로 일명 유관순굴이라고 한다. 순국선열추념탑은 이봉창·윤봉길·유관순·안중근 등 애국지사들의 높은 뜻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고 3·1독립선언기념탑은 탑골공원에 있었던 것인데 1992년 복원했다.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세운 독립문(사적 32)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려는 의미에서 만든 기념물이다. 서재필(徐載弼)이 제안하고 국왕의 동의를 얻어 뜻있는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대대적인 호응을 받아 완공하였는데 원래 지금의 위치에서 남동쪽 70m 지점인 도로 가운데 있었으나 1979년 성산대로 건설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오게 되었다.

영은문(迎恩門)은 1407년(태종 7)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서대문 밖에 세운 사대주의 상징물인데 1896년(고종 32) 김홍집 내각 때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영은문주초(迎恩門柱礎) 2기(사적 제33호)가 남아 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들에게 영접연을 베풀던 ‘모화관(慕華館)’으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후에 독립협회가 사무실 겸 집회실로 사용하였다 하여 일제가 강제 철거하였다. 1997년에 목조건물로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 봉안과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