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내전

앙골라 내전

[ Angola civil war ]

요약 1975년 3월부터 1976년 2월 사이에 앙골라 해방세력 간에 전개된 독립 후의 지도권을 둘러싼 내전.
언제 1975년 3월 ~ 1976년 2월
어디서 앙골라
누가 앙골라 해방세력들
무엇을 전쟁
어떻게 소련, 동유럽, 미국, 중국의 개입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 후 그 지도권을 차지하려고

포르투갈령(領) 앙골라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앙골라해방인민운동(MPLA), 반공적(反共的)인 앙골라해방민족전선(FNLA), 앙골라전면독립민족동맹(UNITA)의 3개 조직이 대립하면서 대(對)포르투갈 무장투쟁을 전개해왔다.

1974년 4월의 포르투갈 본국의 정변(政變)으로 새로 들어선 정부가, 식민지에 독립을 부여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에도 대립은 계속되어 오다가 1975년 1월 케냐의 조정으로 3자가 단합하여 포르투갈과 독립 협정을 체결, 잠정정부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3월에는 MPLA와 FNLA 사이에, 5월에는 MPLA와 UNITA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고, 8월 이후는 MPLA 대 FNLA·UNITA 연합세력의 형태로 재전이 격화하였다. 처음에는 소련 ·동유럽 국가들의 원조를 받은 MPLA가 미국 ·중국의 원조를 받은 연합세력을 압도하였으나, 10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군대의 개입으로 형세는 역전되었다. 그러나 11월 초부터 쿠바군의 투입과, 소련의 무기원조 확대로 형세는 다시 역전, 1976년 2월에는 MPLA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한편, 내전 중에 MPLA는 앙골라인민공화국을, 연합세력은 앙골라민주인민공화국을 선언하였는데, 내전이 종결된 직후 인민공화국의 정통성이 아프리카통일기구(OAU)에 의하여 인정되었다.

앙골라내전
발생시기 주요사건

1956년

포르투갈에 대한 독립 운동 과정에서 소련 지원하는 앙골라해방인민운동(MPLA)가 결성.

1964년

미국 지원의 독립운동 단체 앙골라전면독립민족동맹(UNITA) 결성.

1975년 11월

앙골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MPLA와 UNITA간의 권력 쟁털전 본격화.

1976년 11월

MPLA 단독 집권.

1990년

앙골라 정부 복수정당제 허용.

1991년 5월

정부, UNITA 반군과 제1차 평화협정 체결.

1992년 9월

앙골라 대선 및 국정 선거 실시. MPLA의 산토스 후보 당선.

1992년 11월

UN 중재 하에 MPLA-UNITA 휴전 협의.

1995년 5월

산토스 대통령의 내전 종식 선언.

1996년 1월

정부군, 반군 지역인 남부 치부로에 공격 실시.

1998년 7월

UNITA 반군 카마칠로 점령.

1998년 8월

UNITA 포르투갈, 러시아, 미국 3개국이 보증한 계약을 파기, 러시아가 MPLA 정부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주장.
앙골라 정부는 UNITA가 평화의정서를 위반하고 반정부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는 이유로 UNITA 측 정부 인사 70명 축출.

1998년 9월

UNITA, 캉골라 장악.

1999년 1월

앙골라 정부, 평화협정 폐기 선언.

1999년 3월

UNITA, 쿤싱가와 치페타 점령.

1999년 4월

앙골라 정부, 20~21세 모든 남성에 대한 징병소집 명령.

2000년 1월

UNITA 반군이 점령한 앙골라 중부 지역에서 대량 학살 흔적이 발견.

2002년 2월

UNITA 지도자 사빔비 사망. 앙골라 정부군-UNITA 휴전에 합의.

2002년 4월

양측 대표, 휴전협정에 공식 서명.

참조항목

내전, 앙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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